제대로 되어먹은 작가는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작품도 내어 놓은 것이 없지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브런치에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작년의 목표였던 150개의 글을 적는 것은 충분히 넘겼다. 심지어 마지막 12월에 급성담낭염으로 3번이나 쓰러지는 끝에 수술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애독자다.
나는 내가 써놓은 글을 자주 읽는 편이다. 자신이 쓴 글을 바로 다시 읽으면 보통 기분이 좋지 않다. 뭔가 모자란 것 같고 뭔가 고쳐야 할 것 같고. 결국 포기하고 남들에게 내어놓는 작업이 참 어렵다.
그런데 오래전에 쓴 글은 다르다. 그때쯤 내 머릿속에는 그 글을 쓸 때 같이 있었던 잡생각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새롭게 읽힌다. '이런 생각을 했었나?' '오. 이건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이나 어색한 부분도 당연히 있다. 그래도 독자로서의 나는 '읽을만한 수준'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글을 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작가'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다. 제대로 된 책 하나 내놓은 게 없으면서 무슨 작가냐고? 디지털 시대에 그게 맞는 말일까?
그렇지만 나 역시 책에 대한 갈망은 있다. 그래서 완결된 이야기를 내놓거나 완결된 구성으로 책을 내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길고 긴 싸움이다.
한 권의 책은 10만에서 15만 자 분량의 원고를 필요로 한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익숙한 200자 원고지라면 500장 이상의 분량이다. 200자 원고지 10장도 채우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양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뭔가 잘 되지 않으면 주변 환경을 바꿔보려 한다. 글을 쓰는 장소를 바꿔보기도 하고 시간을 바꿔보기도 한다. 그리고 원고지에 펜으로 쓰지 않는 지금, 수많은 작가들은 '키보드'를 바꾼다.
얼마 전에 키보드를 바꾼 것에 대해서도 글을 올렸다. 나는 지금껏 기계식 키보드를 쓰지 않았다. 굳이 비싼 기계식 키보드를 쓰지 않고 대형 마트에서 1만 원짜리 멤브레인 키보드를 사서 썼다. 쓰는데 불편하지 않다면 크게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걸로 몇 년간 글이 아니라 게임을 즐겨도 큰 문제가 없었다. 반응속도 같은 것을 따지기엔 그런 방향(?)의 하드게이머는 아니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막히면 뭐라도 바꿔야 했다.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에 어릴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때, 약간의 허세가 있던 시절에 나는 집에서 클래식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집에 CD가 그런 것 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냥 그런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다. 몇 장 안 되는 CD로 돌려 들어야 했지만.
그때 좋아했던 곡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세미 클래식 피아노 소품곡이라고 적혀있던 CD에 있던 곡들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이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나 라캄파넬라, 소녀의 기도처럼 유명한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카르멘 - 투우사의 노래도 유명한 곡이었다.
그런데 유독 CD 하나에만 익숙하지 않은 클래식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곡 중 가장 좋아했던 곡은 바로 '타이프라이터'라는 곡이었다.
'The Typewriter'
르로이 앤더슨의 협주곡 이름이다. 그때는 누구의 곡인지도 모르고 들었다. 단지 클래식 악기들 사이에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타자기 소리와 땡~ 하고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지이익 하고 당기는 소리가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즐겨 듣던 곡이었다.
나이가 먹고 나서 락과 메탈에 빠지고 더는 클래식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었지만 나는 사실 키보드, 정확히 말하면 타자기의 그 소리가 머릿속에 항상 남아있었다. 그래서 키보드를 알아보려고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 영상을 보는 순간 그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그래서 고민 없이 첫 기계식 키보드를 '청축'으로 구매했다. 가장 찰칵 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 키보드로. 물론 비싸지 않은 저렴한 모델이지만.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더 비싸고 좋은 걸 써보고 싶어진 게 함정이지만) 적어도 내가 '타이프를 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게 된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사실 지금은 청축과 적축을 번갈아 쓰고 있다. 타이프라이터의 그 경쾌한 소리는 청축에 가깝지만 내 손가락의 느낌은 적축을 더 좋아했다. 작가들이 키보드를 바꾸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키보드를 쳐야겠으니까 뭐라도 적어야 해서 글을 쓰게 되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글을 쓰기 싫어지면 가끔 키보드를 바꿔서 아무 말이나 마구 칠 때가 있다. 그래서 브런치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사실 그러기에는 브런치의 서랍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린 시절 아무거나 일단 넣어놓고 보던 내 책상 서랍처럼 내 브런치의 서랍에는 나의 수많은 것들이 구겨져 담겨있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 것이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행위라면 타이프를 하는 것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행위다. 지금은 음악을 더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