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집에 살게 된 8년 전부터 우리 집 앞에는 공터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2층 앞 공간에서 밖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된 주택인데도 뷰가 나올 수 있는 것은 평소에 그만큼 걸어서 언덕을 올라오는 수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 집의 뷰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공터다. 사실 주인도 있고 아직 남아있는 입구의 계단과 고풍스러운 등만 봐도 한 때 좋은 집터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냥 공터다.
처음 집에 들어올 때부터 옆에 있는 공터는 관심사였다. 언젠가 거기에 건물이 들어온다면, 그게 만일 3층 이상 높이라면 우리 집의 채광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일 새 건물이 들어온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장점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근처에 산책로가 있으니 카페와 같은 건물이 들어올 가능성을 높게 봤다. 우리가 좀 더 부자였다면 그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싶을 정도였다. 땅도 넓고 앞에 가로수를 경계로 큰길에 가깝고 산책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 칸 들어와서 골목에 있는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위치였다.
그 생각은 금방 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은 없지만 그래도 그 땅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땅의 등기부 등본을 보고 깨끗이 포기했다. 그 입지 좋은 땅이 10년이 넘게 공터로 방치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등기부 등본이 복잡하게 얽힌 상태였다. 거기다 마을 주민 분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이상으로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씩 2층 테라스(?)에 올라가서 공터를 내려다보며 상상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차라리 집을 짓는 것보다 아이들과 놀 수 있는 공간과 사무실 공간을 원했다. 그렇게 로또의 도움 없이는 해결도 안 될 상상들을 하면서 가끔 시간을 보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름이 몇 번 지나면서 공터의 나무는 우리 집 2층에 도달할 만큼 자랐다. 더 이상 공터라기보다는 정글에 가까웠다.
특히 여름이 되면서 수많은 풀벌레들이 날아들었다. 모기는 기본이었고 2층 테라스에 서 있다가 갑자기 날아온 사마귀가 몸에 안착하는 사건도 있었다. 담쟁이덩굴은 우리 집 담을 넘어 2층까지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숲으로 변해버린 공터에는 알게 모르게 불법적인 쓰레기 투기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번은 한밤중에 쿵 소리에 나가보니 옆에 원룸에 있던 누군가가 공터에 족발 큰 뼈다귀를 던져버리려다가 조준 미스(?)로 우리 집 세탁실 지붕에 던진 거였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곳곳의 고양이들이 거기 모여서 캬악 거렸다.
어느 날 갑자기 공터에 있는 모든 나무를 밀었다. 아마도 주인이 사람을 사서 한 듯한데 정말 크고 오래된 나무까지 싹 밀어서 공터는 정말 공터가 되었다.
주인은 이전에 버린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그 이상 쓰레기를 투기하면 티가 날 수 있도록 검은색 차양막을 쓰레기를 투기하던 양쪽 원룸과 연결된 담벼락 밑에 덮었다. 이제 더 이상은 쓰레기 투기에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공터를 밀었다는 것은 이제 건물이 들어오는 걸까? 그렇다면 어떤 건물이 들어오는 걸까? 얽히고 얽혔던 복잡한 사정은 이제 끝난 걸까?
깨끗이 밀려버린 공터를 보고 그 생각을 했던 것이 3년 전이다. 공터에는 다시 나무가 자라서 우리 담벼락 길이로 올라왔다. 주인은 아마도 민원 때문에 정리를 했던 것 같은데 건물은 짓지 않았다. 아니 지을 생각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못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겨울, 몸이 아파서 입원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에 오랜만에 2층에 올라갔더니 겨울을 틈타서 다시 공터에 자랐던 풀과 나무들이 싹 없어져 있었다. 누렇게 남은 풀이 있던 자리에는 길냥이만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렇게 공터는 다시 공터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답답하면 2층 테라스에서 공터를 너머 세상 밖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