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경쟁을 하는 것부터가...
저는 이전에도 AI에 관해서 꽤 많은 글을 썼습니다. 지금 이슈가 된 chatGPT 이전에도 Stable diffusion이나 DALLE 같은 그림 AI들이 나왔을 때도 글을 썼죠.
최근에 썼던 AI 관련 글에선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악은 AI에 정복당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작곡은 충분히 AI가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흔히 말하는 '창의성'의 영역 말이죠.
그림도 창작이 가능합니다. 창의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한 '논리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 많이 했던 이야기라 따로 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음악은 AI에 정복당하지 않는다던 이유는 '창의성'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에 대한 부분이죠.
얼마 전에 EBS에서 진행한 특강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유발 하라리가 AI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가 있었습니다. AI는 전문적 영역에 오히려 강점이 있고, 그러한 직업을 대체하기 쉽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전문적 영역에 오히려 창의성은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만든 음악과 그림, 소설을 감상하며 살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죠.
AI는 수많은 데이터 샘플을 예시로 뽑아낼 수는 있어도 감정을 전달하거나 케어하는 것에 있어서는 약점을 보입니다. 수많은 영화에서 AI가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인간들조차도 감정에 대해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AI가 데이터만으로 그걸 추론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간단한 예시로 소시오패스는 친절하거나 예의 바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합니다. 본인은 그걸 연기로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걸 당연한 것처럼 한다면 그걸 '가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AI가 판단하기에 '인간'은 예의 바른 사람을 싫어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AI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인간'의 기준에 소시오패스는 빠져도 되는 걸까요?
결국 AI의 한계점 중 하나는 AI 역시 하나의 사례 또는 객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AI가 완벽할 수 없는 지점이죠. 그래서 특히 감정의 영역 같은 경우는 판단의 기준에서 '공감'을 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 영화제에서 꽤나 상을 받았던 '축제'라는 영화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영화는 우리의 장례 문화 안에 있던 부분을 다룬 거였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축제라뇨. 연결이 어려운 감정입니다. 엄청난 악당이라도 죽은 게 아니라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호상'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다 담아냅니다. 무슨 양자역학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 과연 이걸 Ai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없을까요?
그래서 유발 하라리도 오히려 AI는 인간의 감정노동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습니다. 물론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많은 데이터를 기억하고 풀어내는 직업이 더 대체하기 쉽다고 보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보통 높은 가치를 갖는 직업입니다. 의사, 변호사 등등 적어도 시험을 보고 '사'자를 다는 직업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AI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누적된 데이터와 기준이 있다면 AI는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더 높은 가능성에 자동으로 베팅하는 게 가능하기에 수많은 주식과 코인을 하는 사람들이 AI를 활용하고 싶어 했던 것이겠죠.
우리는 창작이 우리의 감정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갖게 되는 감정은 우리의 감각정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에 의해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결국 수신하는 단말기들이 어느 정도는 공통된 데이터와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죠.
AI는 언젠가 그 부분도 정복할 것입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과연 그걸 지금의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