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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Jan 24. 2022

인문학을 뭘로 가르친다고? (1)

게임이 여기서 왜 나와?

 제가 했던 진로 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의 대부분은 HRD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그 때 당시의 진로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것들을 많이 끌고 들어왔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이전에 이루어지고 있던 교육들에서 제가 원하는 방식을 쉽게 접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HRD에서 제가 고민하고 연구하던 교육의 목적과 방식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는 그리 일반화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꾸준히 교육에 관심을 갖고 연구회를 하는 교사분들도 많으시고 놀이교육, 연극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연구하시는 교사분들도 많이 계시죠. 저도 교육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교사분들과도 같이 정보도 공유하고 토론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교육을 실제로 운영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저도 책이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이론이 참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경험'이라고 봅니다. 제가 자주 언급하는 '성공체험'과 같은 것들도 그것의 일종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는 없습니다. 특히 그 경험이 많은 시간이나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에는 더 그렇죠.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상상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진 않죠.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거나 들어도 서로 다른 상상을 하곤 합니다. 이런 말 역시 말로만 들어서는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직접 경험을 통해 느껴보면 확 와닿게 되는 거죠.


 PBL(Problem Based Learning)은 아주 오래된 이론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기도 하죠.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GBS(Goal Based Scenario) 역시 비슷한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어떠한 문제를 가정하거나 시나리오를 통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은 나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교육 이론이면서도 교육환경에서 생각보다 쓰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죠. 


 우리는 어떠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겠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그건 쉽지 않은 일이죠. 그리고 단순히 경험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경험이 무엇을 줄 것인가는 그 경험 자체에 대해서 또 다른 설계를 필요로 하죠.




 간단하게 생각해봅시다. 아주 어린애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소방대피훈련'이라는 것을 합니다. 화재상황을 가정하고 아이들이 피할 수 있도록 2살짜리 걸음마를 하는 아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가르치는 방법은 화재상황인 것처럼 소리나 효과를 주고 경험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론으로만 가르치기에는 어렵다고 본 겁니다. 차라리 기본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을 몸에 체득하는 형태로 경험을 시키는 것이죠. 즉 학생의 수준이나 상태에 따라서 체험의 수준이나 방식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몰입을 하지 못한다면 쉽게 몰입하도록 연기 같은 것을 피울 수도 있고, 사이렌 소리를 울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장치는 모두 참여자가 조금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죠.


우주전쟁 이야기는 실제로 당시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오손 웰스의 우주 전쟁이라는 라디오 드라마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어릴 때 EBS에서 나오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조지 웰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우주 전쟁'은, 1938년에 미국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방영되었습니다. 당시에는 TV보다 훨씬 라디오의 보급률이 높았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라디오를 즐겨 들었죠. 오손 웰스는 당시로서는 신선한 기법을 활용하여 라디오 단막극 후반부를 실감 나는 뉴스 스타일로 화성침공 상황을 전달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 단막극이라는 것을 모르고 라디오를 돌리다 뉴스라고 생각한 수많은 시민들이 화성인의 침공을 피해서 대피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면서 큰 논란이 됐죠. 


 오손 웰스의 의도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점과 그 당시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고 있던 위치, 그리고 몇 가지의 우연이 겹치면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물론 그 사건이 당시 23살밖에 되지 않았던 젊은 연출가였던 그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몰입을 위한 장치는 매체, 장소, 상황 등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리고 참여자의 수용하는 능력이나 독해능력 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서 몰입을 위한 장치를 준비합니다. '재미'라는 장치를 말이죠.


 알아야 할 부분은 '모든 재미'가 몰입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미로 인해 몰입되는 부분이 전체 경험 중 일부분에 몰리게 되거나 의도하지 않은 다른 경험으로 작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체험교육들이 단순하게 '재밌었네'로 끝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교육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 '재미'를 설계에 집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참여자가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에 따라 어떠한 감정 또는 생각을 느끼거나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추론해보고 방향성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설계된 것을 우리는 '놀이' 또는 '게임'이라고 부르죠. 





 재미를 느끼는 모든 것은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재미와 몰입을 느끼게 되느냐가 다를 뿐이죠. 


 리그 오브 레전드. 일명 '롤'이라고 불리는 게임은 최근 몇 년간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일시적으로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가 따라온 적은 있었으나 여전히 부동의 1위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죠. 


 그런데 이러한 AOS 게임은 팀끼리는 서로 협력하고 상대방과 경쟁하여 승리를 위해서 노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자가 승리를 위해서 노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트롤'이라고 부르죠. 그러한 '트롤'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냥 못한다고 '트롤'이라고 하는 경우보다 '승리'를 위한 의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매우 건전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롤'을 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정말 정말 제가 순화시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 설계된 대로 승리를 위해 플레이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트롤'을 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결국 대부분의 게임의 설계는 인간의 다양성을 '완전히' 예측하고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러한 트롤이 계속 논란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 '롤'이라는 게임이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모두에게 똑같은 경험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그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만일 그냥 플레이하는 '재미'가 트롤을 하는 '재미'보다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당연히 트롤이 더 늘어나고 게임은 망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이 '롤'이라는 게임이 어느 정도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상한 재미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저는 제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수업들을 '게임'을 활용하여 진행했습니다. 물론 수업에서 항상 게임만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놀이를 기반으로 설계를 하되, 트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활동은 그 자체에 어떠한 '재미'를 이미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미'가 전체 학생에게 의도한 대로 작용하지 않는 게 문제일 뿐이죠. 소수의 사람들만 재미있거나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은 트롤을 이끌어 냅니다. 수업 중에 잠을 잔다든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죠. 물론 수업과 상관없이 본인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아이들이 놀이에 열광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죠.



 사실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특히 인문학 수업에서 게임을 많이 활용했는데 학교 입장에서는 난감해하더군요. 그들이 생각한 인문학 수업은 고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내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아, 물론 제가 그런 걸 아예 못해서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은 그런 방식의 수업도 진행했어요. 정말로 고전의 이야기를 가져다 할 때도 있었고, 2017년에는 아이들이 가상화폐에 관심이 많아서 인문학 수업 중 한 시간을 가상화폐의 개념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치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 적도 있었죠. 주제 자체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라서 집중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일선 학교와 강의처 등에서의 평가는 제목과 같았어요. 


 '그게 여기서 왜 나와?'


 인문학 교육인데 게임이라니. 진로교육인데 게임이라니. 거의 그런 식의 반응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학생들이 즐거우면 된다고 게임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feedback'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경험도 'feedback'이 없으면 그 효과가 훨씬 반감됩니다.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기가 힘드니까요. 그래서 게임하고 그냥 '재밌었네'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거기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만일 앞의 몰입 작업이 성공했다면 본인들이 몰입하면서 경험했던 부분과 맞물려서 그들에게 훨씬 많은 것을 남길 수 있게 됩니다.

 







 제가 하는 교육마다 놀이 형태의 교육을 항상 만들어 낼 순 없어요. 하나의 교육을 만드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죠. 그래서 저도 타인이 만든 교육을 많이 가져다 씁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교육이 미스매치처럼 느껴질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제가 강의를 들어온지도 벌써 10년이고... 그 사이 저와 같은 HRD를 토대로 강의하시는 강사분도 종종 보여서 제가 하는 교육 중 일부는 익숙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모르고 쓰시는 분들도 꽤 있더군요.


 (2) 편부터 차근차근 제가 진행했던 워크숍이나 강의들에서 진행되었던 교육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교육과 게이미피케이션,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에 대해서 같이 엮어서 최대한 다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육 중에는 제가 직접 만든 것들도 있고, 다른 강사분들이나 오래전 책에서 배운 내용들도 많습니다. 저의 경험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또 다른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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