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여기서 왜 나와?
사람들은 인문학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대해서 이렇게 반문하죠.
'아니? 어렵지 않은 공부가 있다고요?'
대부분의 공부는 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받아들이는 문제일 수도 있고 처음에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냐의 문제일 수도 있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국어는 매우 쉬운 과목일 수 있습니다. 사실 말은 거의 매일 하는 거잖아요. 코로나라 요새는 좀 그렇지만... 그렇게 매일 쓰는 말에 대한 공부인데 어려울 게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정말 국어 공부 쉽나요? 사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것이라 해도 쉽지는 않죠?
왜냐하면 오히려 자주 접하는 것일수록 그 기준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흔한 것일수록 '좋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올라가는 것이죠. 드문 것이라면 희귀성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일 수 있지만요. 그래서 언어 - 한국인의 기준으로 국어는 우리가 늘 쓰는 과목이지만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죠. 나 자신부터가 인간인데요? 인간이 보기 그렇게 어려운 소재는 아닙니다. 그렇게 딱딱한 소재도 아니고요. 오히려 좀 말랑말랑하죠.
보통 저는 중고등학교 인문학 수업을 가면 항상 이 자리에 몰래 인간 사이에 숨어있던 외계인부터 손들라고 시킵니다. 장난 반으로 손드는 친구들이 꼭 있죠. 한두 명 손을 들면 저는 얘기합니다. 너희들이 봤을 때 얘가 인간인 것 같으냐 아니면 외계인인 것 같으냐고 말이죠. 저는 사실 이 친구가 인간이라는 증거는 너네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너네는 너네 자신이 인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너와 비슷한 것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말이죠. 어떻게 알겠어요. 그 친구들이 집에 가면 인간의 탈을 벗고 외계인으로 지내고 있을지.
그냥 수업 시작할 때 간단하고 농담처럼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결국 인문학의 시작은 인간이 인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라는 주체죠. 굳이 코기토 에르고즘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소재는 사실 주변에 엄청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죠. 그러한 인간에 대해서 배우는데 꼭 고전이 필수인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이 협의의 의미로 '인간의 역사 및 기록에 대한 학문'이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리 되었지만, 광의의 인문학 앞에 고전은 '도움이 되는 방식 중 하나'인 것이죠. 그리고 그렇기에 저는 오히려 인문학일수록 직접적인 사고와 관찰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에서 제가 핵심으로 삼는 요소가 재미인 것이죠.
인간의 행동은 많은 부분이 재미와 공포에서 비롯됩니다. 루틴적인 요소라든가 생리현상, 기본 욕구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심지어는 그러한 기본 욕구와 같은 행동에도 재미와 공포는 반영됩니다. 물론 재미와 공포 단 두 가지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가장 강한 축을 이루는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죠. 생각해보세요. 고전을 통한 인문학 강의가 재미가 없었더라도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고 반응이 좋을까요?
이러한 '재미'의 요소를 가장 잘 다루고 행동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게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을 게임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들이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서 핵심적인 부분만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 또는 웹 3.0 시대가 인문학과 쉽게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를 사용하는 건 고전을 이용한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역사와 사건들에서 우리가 봐야 할 핵심적인 부분을 간추려서 다른 부분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인 사고를 거치지 않고 타인의 사고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기억의 효과가 더 짧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래서 직접 그러한 감정을 느끼거나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정하고 그들에게서 Dynamic, 행동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그들의 Aesthetic을 끌어내는 겁니다.
Aesthetic의 사전적 의미는 한국어 사전으로 치면 '미학의'라고 나오는데 약간 모호한 설명입니다. 케임브리지 사전으로 찾아보면 'relating to the enjoyment or study of beauty'라고 되어있어요. 여기서 앞단의 relating to the enjoyment가 제가 말씀드리는 Aesthetic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약간은 어떻게 게임과 인문학이 연결되는지 느낌이 오시나요?
한동안 게임형 워크숍으로 널리 쓰였던 '마시멜로 챌린지'를 예시로 들어서 설명을 해볼게요.
아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마시멜로 챌린지'는 10여 년 전 TED 강의가 한참 유명세를 탈 무렵에 TED 강의에서 소개되었던 사례였죠. 집단을 특정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게임을 시킨 후 그 과정과 결과를 보고 피드백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죠. 주어진 스파게티 면발과 실, 마스킹테이프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시간 종료시에 가장 높은 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측정하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팀을 직업 별로 나눈다든지, 아니면 특정 소속별로 나눈다든지, 방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무작위로 섞어도 사실 별 상관은 없어요. 단, 무작위로 섞게 된다면 개별 인원에 대하여 특성을 살피기 위해서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측면이 발생할 뿐이죠.
처음에 TED강연자가 진행했던 마시멜로 챌린지는 특정 집단에서 나타나거나 발생하는 문제 해결 양상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정리한 결과를 내놓았죠. CEO 집단이나 특정 대학 학과 집단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높이 등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한 유추, 그리고 진행과정에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반 양상 같은 것을 통해서 말이죠. 또는 유치원생은 평균적으로 얼마의 시간에 얼마의 높이까지 완성하더라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그 TED 쪽에서 진행한 것은 그것을 특성별로 분류한 것이었고 보통 몇십에서 몇백 명을 대량으로 하는 워크숍 계열에서 활용했던 경우죠. 이걸 우리가 인문학적 게임으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바로 위에 말씀드린 게 핵심입니다.
그냥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어떠한 게임 형태이다 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Aesthetic을 얻기 위해서 Dynamic을 유도하는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교육 프로그램 기획분야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설계가 정말 대충인 경우가 너무 많아요. '좋은 게 좋은 거'로 넘어가는 것도 많고, 재밌어 보이면 '재밌으니까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는 변수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가정하거나 분기에 대해서 아예 너무 닫힌 형태로 만드는 경우도 많죠.
위의 마시멜로 챌린지는 저도 교육에서 많이 활용했습니다. 팀빌딩에서도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인문학 수업에서도 약간 변형시키면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그냥 '재밌는 게임이에요.' 하고 그 틀이나 외형만을 빼서 진행하는 경우는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특정한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는 거죠. 만일 장기 프로그램이라 아이스 브레이킹 용으로 재미만 추구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설계가 들어가지 않으면 프로그램 전체 구성으로 봤을 때는 이미 삐걱거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사고에서 우리가 가장 위험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본인이 재밌다고 느낀다면 그에 대한 나머지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별 의미 없이 누군가를 때릴 때도 있고, 의미 없는 소리나 두드리기, 뛰기 등을 반복하기도 하죠. 그런 어린 나이대에는 본인이 재밌다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이나 감정을 주는지 고려하지 않고 행동을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바뀌지 않고 자라서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재미를 행동의 근원이라고 했는데, 그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도박이죠.
도박이라는 행위가 갖고 있는 재미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재미에만 집착하고 인문학적 접근이 없이 풀린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괜히 중독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다른 매거진에서 자주 다루는 가상화폐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경계의 신호를 자주 보내는 이유도 그런 부분에 있습니다. 우리가 재미라고 느끼는 부분은 생각보다 넓고 광범위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행동의 근원이 됩니다.
초반에 인문학 수업을 할 때 아이들에게 '내가 인간인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실제로 본인 하나만을 케이스로 보면 '나'만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는 분류, 즉 클래스가 필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클래스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분류를 공유하고 있는 '인간'이라고 불리고 있는 타인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문학 수업의 시작은, 게임형 활동들에서 타인에 대한 관찰하기를 주로 이루어서 진행됩니다. 이게 제가 게임을 통해 인문학을 가르치는 이유이자 방법이죠. 타인의 행동을 인지해내고 그러한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는 인문학을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는 제가 가장 많이 활용했던 HRD형 게임들을 통해서 어떻게 인문학적 수업을 접근했는지 다뤄보겠습니다. 사실 별 거 없지만요.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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