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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Mar 13. 2021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쓰는 일기

마지막이자 시작인 것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끼니를 겨우 때우고 하루를 대충 날려 보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하루를 보내버리는 것은 밥 한 끼 먹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어느새 몸으로 쉽게 익혔다. 이런 일에는 특수할 정도로 빠른 습득력을 보였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의미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쩐지 이 시기가 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본가에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모든 게 다 귀찮아져서 혼자 있기로 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이미 성탄절이 지나버렸기 때문이고 주말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해리포터와 함께 했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유튜브로 해리포터의 요약본을 봤다. 내레이션의 남자 목소리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해리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네요. 저는 24일에 자서 26일에 일어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동질감과 함께 편안함을 느꼈다.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 반이 넘어가 있었다. 오늘은 꼭 자기 전에 운동을 해야지 하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을 했었다. 이 주일 정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 넘었을 것이다. 속으로 다짐을 한 지. 몸이 뻐근했고 특히 골반과 허리 뒷 쪽에 뻣뻣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깨와 목 뒤도 굳어져가는 느낌이었다. 겨울이라 집에서도 밖에서도 웅크리듯 앉아 있는 탓이었다.

며칠 전부터는 턱에서 툭툭하고 소리가 났다. 사소한 것에도 긴장이 되어 턱까지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다.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팠던 날, 인터넷으로 턱에서 소리 나는 이유를 검색해봤다. 설명은 꽤나 자세하게 나와있었는데 크게- 자세 때문 - 턱을 괴는 습관 등이거나 아니면 어깨나 목의 근육 때문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이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거의 모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후로 턱에 힘이 들어가면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몇 번이고 입을 벌렸다 닫으며 턱에서 나는 툭툭 거리는 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턱을 이리로 저리로 움직였다.

새로 나온 앨범 하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한 기사에서 이번 앨범이 전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적은 것을 보았다. 말미에 가수는 “다음번에는 가사를 한국어로 쓸 것”이라고 자조 섞인 듯 말했다. 이번을 실패로 단정하는 것 같은 기자의 어투에 나는 내가 다 멋쩍어졌다. 집 안의 몇몇 작은 소음 외에는 노랫소리가 전부인 이 작은 공간에서 노래를 듣다가 정말이지 문득, 새벽,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시작! 하고 방아쇠가 당겨진 것 같았다. 가슴에 아릿하게 통증도 느껴졌다. 답답한 감정으로 꽉 막힌 것 같았다.

패딩을 걸치고 잠옷 바지 위에 운동복 바지를 껴입었다. 담배를 안 핀 지 얼마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오래전 사두고 피지 않은 담배를 주머니에 챙겨가지고 나왔다. 새벽 두 시가 되어가는 거리에는 배달 오토바이만 드문드문 지나갈 뿐 아무런 인적이 없이 텅 비어있었다. 무거운 안개로 가라앉은 거리에는 축축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한강을 향해 걸었다. 걸어서 오분 거리에 한강으로 향하는 나들목이 있다.

언젠가, 아마도 19살이거나 20살 때 아이팟 하나만 손에 쥐고 한강으로 내달리며 뛰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울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에도 무언가 답답하게 누르는 느낌에 밤에 혼자 집 밖을 나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내가 무엇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았다. 다른 것은, 그때의 나는 다리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렸으나 지금은 한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무겁게 바닥으로 짓눌리는 것처럼 걸었다.

멀리 검은 물이 출렁이는 한강이 보였다. 나는 특정한 위치로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몇 달 전,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던 중 밤늦게 혼자 선박장 앞에 쪼그려 앉은 한 여자를 보았다. 그 사람은 내가 멀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때에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저 사람이 물에 빠져 버리기라도 할 까 봐 조마조마했다. 신고를 할지 말 지 서서 고민을 하다 결국 내 갈 길을 되돌아갔다. 오늘, 그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여자가 있던 위치에 가서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앉아서 바라본 한강의 물은 무겁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검은 물결이 눈 앞으로 몰아치고 강둑으로 부딪히는 물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뿌연 스모그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어 멀리 보이는 모든 풍경이 희미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는데 라이터의 불이 아주 작게 켜지다 꺼졌다. 입안에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미 욕을 내뱉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짧게 불이 튀어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든 불을 붙이려고 몇 번을 반복하며 라이터에 불을 켜고, 불에 담배를 연신 갖다 댔다. 그렇지만 결국 불가능한 것이었다. 질겅질겅 쎄개 물어 담배 끝만 물렁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체념하고 담배를 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몇 번을 반복했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얼굴로 매서운 바람이 느껴졌다. 약한 피부가 놀라 붉어졌다. 눈에는 많은 눈물이 맺혔다. 코가 시리고 얼굴은 뜨거웠다. 나는 무언가에 거세게 대항하듯 울지 않고 버텼다. 그저 아픔으로 느껴지는 바람을 몇 번 맞고 자리에 일어나 온 길을 되돌아갔다. 얼른 집으로 가서 따듯한 차를 마셔야지, 따듯함을 느껴야지,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들어와 루이보스 차에 위스키를 살짝 넣어 마셨다. 금세 몸이 따듯해졌다. 이브에 명동성당에서 산 밀랍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밀랍 초가 천천히 흘러내리며 타내려 가는 것을 바라봤다. 초가 타들어갈 때 나는 미세한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었다.

며칠 전 이브 날에 명동성당에 갔다가 기도를 했다. 종종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사원이든 종교를 불문하고 신성하다고 느껴지는 곳에 가면 진심으로 무언가 기도를 한다. 이번 기도는 특별했다. 언제나 나는 욕심이 가득해서,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원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쏟아내듯 바란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에게도 깨달음이 있었는지 기도의 내용이 이전과는 좀 달랐다. 나는 이제 나를 보기로 했다고, 나를 보고 살기로 했다고- 그러니 가여운 나를 좀 안쓰럽게 봐달라고, 그저 봐주기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며, 나이가 드는 아빠와 오빠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특히 아빠가 부디 아프지만 않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와 마음에 따듯함을 느끼며 깨끗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아빠에게 안부전화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까지 하지 않았지만 내일은 꼭, 아니 오늘은 꼭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지 다짐하며 초가 끝까지 타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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