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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Mar 07. 2021

사라지고 싶은 마음

무색무취의 그 겨울


멋이 살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고로 그 반대는 멋이 살아야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머리를 위로 싸매듯 예쁘게 묶지 않으면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면 맘에 들지 않는 다고 아빠에게로 쪼르륵 가서 머리를 다시 묶어달라고 하는 고집 쎈 아이. 여전히 머리를 높이 하나로 묶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일까 이마 옆 쪽 머리가 조금 비었다. 위로 머리를 세게 묶으면 두피에 가해지는 부담으로 그 자리에만 머리카락이 빠져 부분 탈모처럼 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어, 머리가 살짝 비어 보이는 부분에 안쪽 머리카락 몇 가닥을 조심스럽게 잘랐다. 잔머리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올림머리는 꼭 하고 싶고, 멋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요즘 매일 학원을 가고, 코로나 때문에 밖을 나가는 일이 줄어들어 패션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 삶에서 아예 패션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그저 옷이란 내 몸을 가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방편에 그쳐있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퍽 슬픈 기운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제는 슬프다 못해 내 자신이 처량하고 안타깝게까지 느껴진다. 오늘은 새로운 옷을 사고 싶어 거의 하루 종일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보온과 멋까지 다 잡은 옷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러다 지쳐 몇 시간 동안 거울 속 무색무취의 옷을 입은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요 며칠 내가 거의 교복처럼 입는 것은, 위에는 오래전 유니클로에서 산 하늘색 플리스를 입고 흑청 와이드 바지와 마지막으로 검은 패딩을 툭 걸친 게 전부다. 오와. 정말이지 멋이라곤 하나도 없는 학원룩. 숨이 턱턱 막힌다. 이것에 유일하게 멋을 내기 위해 머리를 위로 끌어올려 만두머리를 하는데 어째 이마저도 기가 막히게 학원룩에 화룡점정인 것 같이 꼭 어울리는 것이라 정말 숨 막힌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제일 가까운 것들이, 내 몸과 내 머리와 심지어 내 얼굴까지도, 마스크로 가려 눈만 드러나는데도 내 눈빛이, 반짝거림이 사라진 내 눈빛까지 모든 게 소스라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는 것을 안다.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시선이고,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생리가 끝나고 나면 이 모든 짜증이 사라지겠지 생각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작년 겨울 오래전에 알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는 마치 증발해버리듯이 주변의 모두와 인연을 끊고 번호도 바꾸고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는 절대 잊히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모두를 지우고 살았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친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던 즈음 자신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 옷과 가방, 화장품, 모든 가구들, 심지어는 속옷과 양말 하나까지도-을 버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인지 알 것만 같은 것이 내 안에도 있었다. 다만 나는 ‘지금은?’이라고 짧게 물었고 친구는 절대 다신 그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 하듯 웃으며 대답했는데 문득 친구의 그때 얼굴이, 웃었다고 기억하고 있던 그 얼굴이 서늘하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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