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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Feb 26. 2021

스무 살의 단편.

그때도 어쩌면 지금도.


스무 살의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깊은 내적 친밀감을 쌓고 있었다. 그때는 사실 그런지도 몰랐다. 최소한의 혼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나에게는 두 그룹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한 팀은 미술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한 팀은 죽마고우 팀이다. 대학을 들어간 이후로는 공통 관심사가 많은 미술학원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냈다.

우리는 주로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S의 집에 모였다. 주말마다 모여서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평범한 일들을 같이 했다.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 K는 같이 모여 드로잉 모임을 하자거나, 그림을 같이 그리자거나 하는 등 의욕을 가지고 모임을 주도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주중에 그린 그림들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매주 지켰던 것 같지도 않고 그저 만남의 명분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그때의 우리 셋은 만남과, 모임과, 우정에 몰두해있었다.

당시 나는 다니던 학교에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그림 이야기를 하는 게 순수하게 좋았다. 속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매주 만나 무언가를 하면서도 서로를 잘 살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릴 때는, 감정적인 교류가 크면 클수록, 서로에게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나는 더 그랬다. 나밖에 몰라서 주변을 살피거나 친구들의 감정을 헤아리거나 하는 부분에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취약했다. 1년의 주말을 거의 함께 지내고, 또 방학 때는 매일 같이 만났던 셋. 우리가 삐걱거린 건 언제였을까를 가끔 생각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관계에 대해 어려워하면서도 스무 살의 여름을 떠올리면 코 끝 찡한 그리움과 눅눅한 비 냄새가 몰려온다.

나는 어쩐지 그 시작이 연이의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S에게는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연이라는 친구였다.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연과 S는 1년 정도를 같이 살았다. 연이와는 사실 인사 한 기억이 전부다. 연은 집에 붙어 있지 않는 성격의 친구여서 언제나 짧게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떠나는 연의 뒷모습을 셋이 나란히 서서 밝게 인사한 기억이 선명하다. 골목길을 돌아 나가는 모습을 보며 배웅하려고 작은 창문을 열고 셋이서 손을 흔들었다.

연이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다음 해 여름 방학이었다. S는 연과 살았던 집에 다른 친구와 살고 있었고, 해를 넘겨서 K와 나도 S와 셋이 모여 노는 횟수가 서서히 줄어드는 시점이었다. 스무 살의 여름과 다르게 그때부터는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하는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어느 날 S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고 그때 처음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며칠 뒤 홍대의 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셋이 만났다. S가 연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데 앞에서 우는 친구를 보며 어쩐지 계속 뒷골 서늘한 느낌에 혼자 빠져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속으로는 S가 그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애에 대해 그만 알고 싶다고, 나는 인사만 했을 뿐이라고, 그 애의 아픔에 대해서, 그 애의 우울에 대해서, 그 애의 외로움에 대해서. 나는 알 자격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그 애의 죽음을 너와 엮지 말라고, 우리와 공유하지 말라고. 우리 이제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평소처럼 하하호호 웃고 놀면 안 되냐고, 아이처럼 크게 울며 소리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힘들고 내 아픔을 털어놓는 것이 어렵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사려 깊게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속마음이라는데 볼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 꺼내 놓으며 또 어떻게 생겼는지 가늠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나조차도 이렇게 내가 어려운데 이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우정을, 사랑을 할 수 있을지가 나는 막막했다. 다툼 없이 멀어져 버린 관계로 실패를 맛본 이후 나는 많이 변화했다. 사랑은 아직이지만 우정은 새롭게 이뤘다. 친구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살피고 손을 뻗어 곁을 내준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 미안함 뿐인데, 친구들은 그런 건 넣어두라고 말한다.

스러지고 새로 생긴 여러 인연들 사이로 굳건하게 있는 오랜 나의 친구이자, 언니 같고, 조금 얄미운 가족 같은 친구에게서 얼마 전 연락이 왔다. 자신의 꿈에 내가 나왔는데, 꿈에서 내가 자기 집에 놀러 와서 울다가 뛰쳐나가는 꿈을 꿨다고 한다. 친구의 문자를 보고 나는 새삼 놀라웠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가 보지도 않고 연락을 안 한지도 오래됐는데, 서로의 마음을 감지하는 일이 이런 무의식 상태에서 일어난다니.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의 모든 것을 믿는 나는 다시 한번 인연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실이 서로에게 감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끊어질 듯 이어져 있는 오랜 나의 친구와의 실을 다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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