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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Feb 25. 2021

안부와 꾀병

나는 건강합니다.


그릭요거트-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요거트로 일반 요거트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몸에도 좋고, 마치 생크림과 같은 부드러운 식감이 맛도 배로 좋은 요거트-를 만들어먹어야지 생각을 며칠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것의 파생은 찌뿌둥하게 퉁퉁부은 몸의 영향 한 스푼 그리고 마트에서 시식으로 맛을 본 수제그릭요거트의 영향 두 스푼쯤이었을 거다. 오늘. 움직이기 싫다는 이유로 미뤄둔 집안일-쌓인 설거지와 바닥 곳곳에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가축의 껍데기를 뒤집은 듯 헐벗어 놓은 옷가지 등- 을 아주 빠른 속도로 처리해 내면서 비로소 요거트 만들 재료를 사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갑자기 생긴 파워는 조금 의외의 것이었는데, 다름 아닌 친구의 방문이었다. 일주일 정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나는 일주일간 단 몇 마디의 말만을 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삶을 살았단 거다. 너무나도 자발적으로, 아무 이유도 없이.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 나가 맛있는 커피를 홀짝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불러도 될 것을 굳이 내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외출 전까지도 나는 오늘이 주말이고 토요일인 것을 잊고 있었다. 덜 말린 머리를 날리며 카페에 가니 그 작은 카페에 사람들이 꽉 차서 더덕더덕 붙어 앉아있었다. 뜨겁고 탁한 열기가 우글우글 뭉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이 앉을자리는 있었지만 도저히 아닌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른 카페를 가지 않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잠깐의 환기 이후 집으로 오니 세상 아늑했다. 작은 내 원룸과 내가 마치 한 몸같이 느껴졌다. 떨어지면 이내 바로 붙고야 마는, 한 쌍처럼.

밀린 일들을 해치운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밀린 수다를 원 없이 떨었다. 친구는 눈 앞에 있는 나를 두고 계속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냥 잘 지냈다 짧게 말하며, 병아리콩을 넣고 지은 밥을 소분하여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다음으로 빈 밥통을 씻어 우유와 유산균을 붓고 젓가락으로 휘익 저었다. 친구는 내 모습을 사진 찍으며, ‘이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하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나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고, 생생히 전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 날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나의 건강함에 관한 것이었는데, 최근 에피소드 중 하나는 치과에 다녀온 스토리가 있다.

저번 주에 몇 년 만에 치과를 갔다. 거울을 보다가 아랫 어금니에 검은 형태의 무언가가 보이고 심지어는 이빨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한밤 중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 근처에 평이 좋은 치과를 찾아 다음날 아침 예약을 했다. 늦잠을 자느라 가지 못하고 그 날 저녁이 되어 갔다. 가기 전, 두려움과 걱정이 한 움큼 크게 있었다. 정말 혼자 온갖 걱정을 했다. 충치 치료에 대한 여러 방법과 비용을 인터넷으로 밤새 찾아봤다.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보는데, 웬걸, 내 이빨에 있는 검은 물체는 다름 아닌 임플란트였다. 어린 나이에 한 것을 나는 기억에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의사 선생님에게 저는 저게 충치인 줄 알고 치과에 온 거다 말하니, 선생님도 웃고 간호사 언니도 웃고, 나는 나사 빠진 사람처럼 웃음이 계속 터져 나와 박수를 쳐가며 눈물인지 웃음인지를 쏟아냈다. 그리고 무사히 스케일링만 받고 돌아왔다. 치과를 나오면서, 나에게 충치 하나 없으셔서 스케일링도 1년에 한 번만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밤새 걱정을 한 내 마음이 물거품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정말이지, 싹-뿅- 하고 느끼는 감정의 전환이 참 기분 좋았다. 그리고 새삼 나의 건강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항상 내가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걱정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도 아픈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는 배가 정말로 아파서 잠을 자다 몇 번이나 뒤척이고 잠에서 깨기도 하고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아픈 걸 상상한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그 의심은 다름 아닌, 새로 다니는 학원을 하루 빠지기 위한 나의 꾀일 것이다. 겨우 하루 갔지만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 나가는 외출이 퍽 힘이 들었다. 대부분의 첫날이 괴로운 것처럼, 그리고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닌 것이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익숙해지기를 내 몸으로 거부했다. 그러고 나자 정말로 온몸이 쑤시듯 아팠다. 몸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나면 몸 안의 장기들의 작은 떨림도 느껴지는 것 같고, 혈류가 움직이다가 잠깐 멈칫하는 지점도 어딘 지 알 것만 같을 때가 있는데, 나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고 바로 누워서 지금은 여기가 아픈 것 같아, 지금은 여기가 꿀렁거린 것 같아, 하며 내 몸 구석구석을 다 싸잡아 아프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다름 아닌 내가 살아있기 위해 움직이는 몸들의 운동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나 게으른데 내 몸의 작고 많은 세포들은 나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 1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아프고 싶을 때, 어디도 아프지 않아 몸 어딘가가 아픈 상상을 하며 아주 멀리까지 나래를 펼치며 혼자 꾀병을 부렸던 나의 덧없고 허무한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꼭 내일은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해야지 생각했다. 나는 아주 건강하고 더 건강하기 위해 무려 그릭요거트를 손수 만들어 먹는 성실함까지 나에게 있다고. 마음가짐이 처참하게 무너져있어도 나의 몸 가짐은 언제나 곧다고. 나의 건강한 몸으로 나의 마음도 어느새 융화되어 건강해진다고, 그 순환이 때로는 길고 때로는 위태롭지만 대개는 잘 유지가 되고 있다고 말을 전해주어야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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