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해 Feb 17. 2021

8번째 지내는 제사

엄마유령, 보고 싶어요. 항상.


알람을 7시에 해두고 그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눈을 떠 멀리 붙어있는 벽시계를 봤다. 느리게 가는 초침을 한참을 바라봤다. 비뚤어진 자세로 고개가 아팠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만큼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몸이 무겁고 길게 늘어졌다.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밖으로 나왔다. 얇은 니트 속 맨살에는 닭살이 돋았다.

아침은 아직 추웠다. 연휴날의 사람 없는 거리가 기분 좋았다. 자전거를 대여하고 한강으로 가는 나들목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굴을 뚫고 지나갈 때, 훤한 풍경의 대비가 언제나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바람을 맞으며 언덕을 빠르게 내려간다. 평지에 다다라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자전거로 이십여분이면 가는 거리에 평생을 살아온 동네- 나에게는 고향이기도 한 - 가 있다. 성수대교를 지나면 바로 동호대교가 보인다. 용비교의 콘크리트 곡선이 아름답다.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철길은 정감가는 기찻길이었다. 작은 다리를 지나며 동네에 다다른 풍경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따듯하네. 마스크 속에서 작게 혼잣말을 했다.

동네에 다다라 자전거를 반납하고 집까지 걸어갔다. 위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점들 - 바뀌지 않은 오래된 동네 마트, 미용실, 인형 뽑기 가게, 정육점, 약국을 지난다 -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골목으로 접어들어 언덕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무엇하나 변한 것 없는 골목, 조용한 풍경. 오래도록 지겨워했던 풍경이었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일어나 혼자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작은 상을 거실에 펴두고 그 위로는 엄마 사진이 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짧게 인사를 하고 주방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더러운 집 아니 평생이 더러운 집. 먼지와 오래되어 부식된 곳곳의 틈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잔소리를 하게 될 것 같아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이건 어딨어?(한숨) 이건 아직도 그대로네(한숨) 이걸 여기 옮겼어?(한숨) 뭔 짐이 이렇게 많아(한숨) 이건 또 뭐야(한숨)…

사온 전을 그릇에 맞춰 담고 과일을 닦아 윗부분을 깎아 올리고, 틈틈이 아빠가 고생했네. 하는 등의 말을  의식적으로 했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동태전을 부치고, 고기 요리에, 생선에, 국까지 끓였다고 한다. 손으로 하는 모든 걸 참 잘해, 나는 아빠에게 칭찬의 말을 아낌없이 했다. 나는 불효녀다. 어쩔 수 없는 불효녀고 변할 마음도 사실 없다. 나는 이 집이 힘들고, 지치고, 가족이 싫고, 일 년에 세 번씩 꼬박꼬박 차례상을 차릴 여력이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소박할 뿐인 상차림이어도 나는 하고 싶지가 않다. 이것으로 죽은 엄마가, 배를 곪지 않을 거라는 위안을 얻고 싶지도 않고 어떤 기도나 바라는 것도 없다. 무의미한 의식 속에 아무런 마음도 생기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불효녀를 할 것이다.

올해는 상에 밥과 국을 두 개씩 더 올렸다. 큰아버지가 죽은 뒤로는 더 이상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집에서라도 아빠의 아버지와 엄마 - 얼굴도 희미한 아니 거의 모르는,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 의 밥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상이 빈틈없이 꽉 차 그릇 하나는 밖으로 걸쳐서 놓아야 했다. 술을 올리고 오빠와 내가 절을 했다. 아빠는 옆에 앉아서 홀짝홀짝 술을 따르고 본인이 마셨다.

이제 밥 먹자. 기다리던 말. 아빠의 말과 동시에 먹을 것만 상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 세 개의 국과 밥은 오빠와 나와 아빠가 각각 먹었다. 고기를 자르고 김치를 꺼냈다.

나는 몇 달만에 보는 오빠와 아빠의 얼굴을 그제야 제대로 봤다. 실제 시간보다도 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아빠는 얼굴이 이전보다도 고왔다. 오빠도 피부가 마치 고등학생처럼 뽀얗다, 트러블 하나 없이. 수염 자국 하나 없이. 투명한 흰 피부에 심지어 핑크빛이 감돌았다. 나는 오빠에게 오빠가 아빠를 닮아 피부가 좋은 가보다, 말했다. 오빠의 팔 손목 부근에는 몇 가닥의 털만 길게 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도 또, 꼭 아빠 같다고 말했다. 아빠의 몸에는 부분적으로 몇 가닥의 털이 길게 나 있어서 어릴 때 아빠의 털을 만지작거리고 놀린 기억이 떠올랐다. 오빠의 모습이 꼭 아빠와 같았다.

오빠는 먼저 밥을 먹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고 아빠와 내가 남아 밥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밥 한 그릇이 줄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냥 눈 앞에 있는 아빠를 빤히 보는데, 순간 슬펐다. 목이 메었다. 아빠는 나에게 울라고 했다가 울지 말고 뚝하라고 했다가 어쩔 줄을 모르고 오락가락했다. 나는 한 번도 가족 앞에서 맘 놓고 울어본 적이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냥 울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말했다. 슬프다고, 오랫동안 슬펐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또 무서웠다고. 아빠도 어느 날 그렇게 갈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울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빠도 조금 슬픈 것 처럼 보였다. 아빠까지 슬픈 건 싫어서 눈물을 그치고 물을 마셨다. 밥알이 목에 남아있는 게 느껴졌다. 체할 것 같았다. 아빠는 밥 먹다가 울면 체하니까 조심하라고 말했다. 나는 진짜 그렇네, 생각했다. 아빠가 생선살을 곱게 발라서 내 밥그릇에 올려줬다. 나는 아빠의 빈 술잔을 채웠다.

작년 고모에게 받은 김치가 집에서 먹지 않아 1년간 묵었다고 아빠는 김치와 나물, 과일을 봉투에 쌌다. 집에 있는먹을 것을 다 챙겨 가져가라고 하며 봉지가 꽉꽉 찰 만큼 음식들을 넣었다. 혼자 들고 가기가 무거워 아빠에게 좀만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현관 입구에서 오빠와 인사를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려는 오빠의 손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오빠에게 손을 뻗쳐서 잡고 있었다. 오빠는 나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고 나는 건강하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와 걸으면서 나는 아빠 팔을 잡았다. 마스크를 까먹고 쓰지 않은 아빠에게 길을 걸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니 이만 들어가라고 했고 아빠는 저기 앞에서 위로 올라가면 된다고 우겼다. 자전거 앞에 김치와 짐들을 싣고 아빠와 인사했다. 아빠는 계속 조심히 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무겁게 자리한 음식들에서 바람을 따라 묶음 김치 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왔다. 한강을 따라 온 길을 되돌아 가면서 나는 어쩐지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집을 생각했다. 뒤로 있는 내 집이, 달릴수록 나와 멀어지고 있는 집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번에 집에 갈 때는 오늘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을 거라고, 앞으로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살기가 싫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