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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Feb 13. 2021

살기가 싫어

정말로. 정말로?


시작은 짧은 한 문장이었다.


살기가 싫어.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등장했고 지워지지가 않는다. 나는 살기가 싫다. 사는 게 힘들다. 살아있는 게 지친다.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앞으로가 없었으면 좋겠다 등등의 말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시리에게 말을 걸었다. 응원 좀 해줘. 응원. 시리는 바보 같은 답을 했다. 너 바보니 했다. 그리곤 빠르게 사과했다. 나쁜 말 해서 미안해. 스스로에게도 다시 말했다. 나쁜 말 하지 마. 그럼 나쁜 말이 너한테 붙어 다녀. 그러니까 나쁜 말 그만하고 나쁜 생각 그만하자. 잘 안 됐다. 나쁜 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독하고 무거운 거라서.

누군가와 통화가 하고 싶었다.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S에게 전화를 할까 잠시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내 걱정을 하는 애한테, 이런 말과 목소리 들려줄 수 없지 했다. N에게라도 전화를 할까 잠시 생각했다. 아니야, 잘 사는 사람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자. 네이버에 자살방지 예방전화를 검색했다. 지식인에는 나와 같이 자살방지센터 번호를 묻는 사람들의 헛한 마음 가득한 문장들이 보였다. 들어가니 몇 개의 번호가 나왔다. 제일 첫 번째로 뜨는 1393에 전화를 했다. 상담사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고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서 두 군데에 더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어디에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런데 지금 오히려 맘이 편하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싶어서 혹은 죽기 싫어서, 어떻게든 전화기라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맘이 나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여기서 느끼는 동질감.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하다가 이런데서야 동질감을 느끼고 잠시나마 맘이 편해진다.

초를 켜서 보고 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따듯한 물도 마셨다. 잘 되지 않았다. 배가 베베 꼬인 듯이 아프고 열이 난다. 머리가 아프다. 약을 팍 먹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남겨둔 수면제가 있을 거다. 그런데 그것 또한 겁이 난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움큼으로 먹는 상상이 빠르게 스쳐 간다.

빌리 아일리시 노래를 듣고 위로를 해야지 했다. 착한 년들은 모두 지옥에나 갈 거야 라고 말하는 나의 슈퍼스타. 천사 같은 목소리로 자신 안의 악마에 대해 숨김없이 뱉어내는 그녀. 그녀도 오늘의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엇도 잘 되지 않아서 몇 시간째 울고 있다. 나는 그냥 사는 게 안된다.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 도저히 안된다. 앞이 이렇게나 깜깜한데. 어디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올해 안에, 혹은 내년 초반에 무언가가 뿅 하고 되지 않으면, 내가 잘 살아있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나는 어쩐지 자꾸 내가 살아 있지 못할 것만 같다. 이 땅에 내가 없을 것만 같다.

웃긴 것은, 살기가 싫은 거지,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울면 울수록 선명해지는 어떤 것이 있는데, 난 정말 누구보다도 더 잘 살고 싶은 거다. 살아서 보고 싶은 것이다. 삶에 대한 열망이 그 누구보다 큰 것이다. 끝과 끝은 연결되어 있다는 누구의 말처럼 살기 싫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은 한 세트였다. 하나로 꼭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수면제를 먹고 안전히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일찍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블라인드를 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환기를 시키고 햇빛을 받으며 온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내 몸에 붙은 나쁜 것들 다 사라지라고 - 목욕을 하고 나와 제 몸을 터는 개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서 몸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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