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일기 쓰기
일 년 넘게 같이 산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다. 그는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혼자서 11일 동안 한국여행을 갔다. 같이 산 이후로 그가 떠나고 내가 홀로 남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일 년 넘게 같이 살면서 가끔은 혼자 살 때의 자유가 그립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책 읽다가 잠들고 싶은데 옆에서 재밌는 드라마를 틀어 놔서 책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내가 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은 보기 싫다고 해서 양보해야 할 때도 있었고, 내 계획대로 자기 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 아직 두 개나 남아서 마음이 급한데 샤워할 때 옆에서 같이 얘기하자고 해서 귀찮을 때도 있었다.
이번에 그가 없는 동안엔 오랜만에 혼자 있는 자유를 만끽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주차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어떤 인도인 여자와 아들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질 않나,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정전이 나질 않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밤만 되면 괜히 혼자 집에 있는 게 무섭고, 더 건강하게 먹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엉망이었다. 괜히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요리도 하기 싫어서 과자만 계속 먹고 TV만 보다가 잠들고 엉망진창이다.
난 분명 예전에 혼자 살 때는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보내고 꽤 독립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혼자 남겨진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외로워하는 게 낯설다. 내가 느끼는 것보다 그는 내 일상에 훨씬 더 깊숙이 스며들어 있구나를 느꼈다. 동시에 내가 전보다 두려움이 더 많아지고 약해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친구한테 털어놓았다. 친구도 전에 남편이 출장 가서 혼자 있었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우리 부부가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소리 지르면서 싸우기도 하고 짜증 내면서 째려볼 때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자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되었구나, 우리 부부가 잘 살고 있구나라고. 그러면서 나한테도 "네가 이렇게 느낀다는 건 너네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다는 거야"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사실 난 '내가 더 약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너무 이 사람한테 기대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내가 이만큼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독립해서 사는 단계를 지나 이제 나의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맞춰가며 사는 법을 배우고 내 가정을 꾸리는 단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십 대 때 혼자 독립해서 살면서 빨래하는 법, 밥 짓는 법, 화장실 청소하는 법, 옷정리 하는 법을 배우고, 혼자서 이사도 여러 번 해보고, 중고차도 사고팔아 봤다면 나는 이젠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 장기 프로젝트에서 우린 서로 역할 분담해서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상대방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의지한다고 해서 내가 전보다 더 약해진 게 아니다. 독립적인 '나'라는 개인에서 서로 책임지고 믿고 의지하는 '우리'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의지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