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에 대하여

by 타자 치는 컴돌이


[[ 타자화 :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로 분리하고 그들의 고유한 주체성을 부정하며, 사회적 배제나 편견을 정당화하는 과정. ]]



언젠가부터 나는 많은 것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고자 했었고, 많은 걸 배워보고자 했었으며, 신학과 철학 같은 부분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자 했었다. 성장하기를 사랑했고, 확고한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나는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러다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자만이었다.

확실히 자만이다.


나는 타인을 더러 '무지하고, 저능하며, 열정이 없고, 목표가 없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따위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역량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도 그리 뛰어나거나 구별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위대하지도,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 사실을 나는 인지하되,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무의식의 '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만심에 찌든 생각을 흘린다. 타인과 비교하기를 꺼리지 않고, 내가 더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누군가는 치기 어린 그 나이대의 어쩔 수 없는 본능같은 것이라 말하지만, 이것은 한 번씩 내게 '관계에서의 저주' 같은 모습으로 남는다.



자만은 문제가 맞다. 그건 관계에서든, 성장과 성공에서든, 혹은 삶의 즐거움에서든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만은 발뒤꿈치에 묶인 쇠사슬과 같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끊어낼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만과 같은 '무의식'과 '본능'에서 나오는 감정은 억지로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을 줄이고 줄이며 인지하려 노력하는 일상을 보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없애거나 한 번씩 튀어나오는 것을 완전히 가려버릴 수는 없다.


타자화라는 것, 결국 자만이라 하는 것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관계 속에서 점점 깎여가는 것이다. 없애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나의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마저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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