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
생각해 보면
나는 계획적인 인간도 아니고, 성실한 인간도, 차분하거나 성숙한 사람도 아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것들은 적응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나를 더러 성실하다고, 성숙하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판단하고 스스로가 바라는 삶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성실을 가지려 발버둥쳤고, 인내와 성숙과 경청을 얻으려 발버둥쳤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노력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내가 막 12살이 되었을 무렵,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형이 죽었다.
형은 별로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2살 차이가 나는 형의 죽음은 어렸던 당시의 내게 꽤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혼란스러워했다.
아무튼 형은 자신의 방에서 숨을 거뒀다.
첫째이자 장남인 아들이 죽은 것은 우리 가족에게 큰 문제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도 컸고, 자식 둘이 모두 딸이었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상심도 컸다.
그런 상황에서, 얼떨결에 장자권을 받은 내게는 책임이 있었다. 어떻게든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해야 했고, 무엇이라도 그보다 나은 아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죽은 그보다 나은 첫째 형이라는 것을 동생'들'에게 보여야 했다. 4형제에서 3형제가 된 우리는 나름의 '책임'이 있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현실에서, 상황에서, 책임에서 벗어났다. 나는 모든 것을 회피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홈스쿨을 하기 시작해 4년에 가까운 시간을 집에 박혀서 살았다. 내가 책임졌어야 했던 문제들은 긴 시간 동안 이 땅에 머물렀고, 그것은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홈스쿨을 했던 나는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재미와 흥미도 없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무도 찾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집 밖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가족 말고는 없다시피 했다.
나는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해졌고,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것에는 적응하는 걸 넘어 친근함을 느꼈다. 공부와 발전과 비전을 모두 때려치우고 시간을 보냈던 나는 '웹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 빠져들었고, 그렇게 내 홈스쿨의 3년은 수 만 화가 넘어가는 웹소설로 채워졌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변명하자면, 그때 나는 어렸다. 어렸다.
누구나 쉽게 하는 변명이지만, 그럼에도 안 꺼낼 수가 없다. 나는 어렸다.
나는 내게 주어진 책임을 맞아들일 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고, 나의 괜찮음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내가 증명한 것은 내가 얼마나 나태하고 무능하며 한심한 인간이었는지 하는 것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중후반.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시작은 나름의 신앙에서였다. 하지만 정말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이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입학했다. 일반학교를 따라갈 정도의 공부를 하지 못했던 나는 어느 작은 대안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신을 차려버린 나는 '지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부터 나는 성실했다. 나와 한 약속을 지켰고, 타인과 한 약속을 조금이라도 지켰다. 호의와 가진 것들을 베풀었다. 공부에 노력했고, 목표를 세워 그것을 위해 애썼다.
그것은 내 속성이나 선천적인 재능 따위가 아니었고, 그저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하나의 속죄였다. 나는 그래야만 했다. 늦었더라도 그렇게 살아봐야 했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버틴' 지도 1년이 넘고 2년 가까이가 되었다. 체감상 풍성하고 다양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1년 2년이 '긴 시간'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완전히 뒤바뀌거나 '1인분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나 명확한 목표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그런 사람이 될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런 맞지 않은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죽어라 살다 보니, 정말로 죽을 것 같은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건강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내적인 문제였다. 괜찮은 사람이 된 것도 아니면서 자만이 쌓였고, 정작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계속 한심해 보이고, 꿈도 목표도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고, 인간관계는 익숙해지질 않았다. 친구들의 공부 수준은 저 위에 있는 걸 보며 노력과 동시에 자책이 쌓였고, 이것저것 다 해보려 했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결국 다 지쳐버렸다. 그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건 몇 개월 혹은 몇 주 전의 일이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무기력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나는 조금 쉬고자 했고, 때문에 많은 것들을 한동안 놓아버렸다. 공부도, 관계도, 독서와 글쓰기도, 운동도, 신앙도, 뭣도.
슬럼프는 '해결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슬럼프는 이겨내는 게 아니라 가라앉을 때까지 견디는 것이었다. 그 문제를 풀어낸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고 견디고 버티자, 전처럼 큰 힘든 마음에 휩싸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이렇게 글을 쓴다.
무려 몇 주 동안 브런치를 열어보지 않았다. 별로 글을 읽고 싶지도 않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뭐라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여전히 훌륭한 사람도 멋진 사람도 아니지만, 그런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전의 열정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사 이 선택이 또다시 똑같은 슬럼프를 불러온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