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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Apr 06. 2024

[홍시 생각 3] 제주 4·3,
美 책임 물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허호준 기자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최근 제주 4·3 관련 글을 준비하다가 눈에 번쩍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단독] 미 국무부, 제주4·3에 첫 입장…“비극 잊으면 안 돼”

라는 제목의 한겨레신문 기사였다(https://www.hani.co.kr/arti/area/jeju/1134908.html).

부제는 '한겨레 질의에 사건 76년만에 입장 밝혀'이다. 


역시 한겨레신문은 다르구나, 창간 정신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한겨레 기자들도 세태에 오염됐다고 하는데…. 누가 썼지?


허호준 기자.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같은 한겨레에 근무했던 고교 동창 친구로부터 '제주 주재 기자 허호준'이   4·3사건을 깊이 파고든 전문가라는 말을 몇 달 전에 들었었다. 허 기자라면 이 기사를 충분히 쓰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기사를 꼼꼼히 몇 차례 읽었다. 

허 기자는 올해 4·3 76주년을 앞두고 기사거리를 찾던 중 미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 같았다. 미 국무부에 이메일을 보내 정면으로 들이대기로 한 듯했다. 한국의 기자가 미 국무부에 이메일로 질의를 하면 선선히 답을 줄까, 그것도 꽤나 민감한 주제인데, 주저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답을 받아냈으니 정공법을 택한 게 잘한 일이었다. 


허 기자는 3월 27일 답장을 받았다. 답이 오긴 왔는데 그로서는 실망이 컸을 것이다. 

비극을 잊으면 안 된다고? 그 엄청난 비극을 누가 잊고 있길래 저따위 하나마나한 훈계나 하고 있나. 당시 미군정이 잘못 대처했고, 그것에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할 것 아니냐. 사건 발생 76년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 표명치고는 한참이나 함량 미달인 맹탕같은 답변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 당국, 국내 언론의 반응이다. 76년만의 미국의 공식 입장 표명이라면 정부 당국에서도 입장 표명을 할 만한데도 오영훈 제주도 지사의 언급밖엔 보이지 않는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연합뉴스, 세계일보, 제주지역 매체 몇 군데, 그리고 개인 블로그 외에는 이 기사를 받지 않았다. 떠들어봐야 미국이 꿈쩍도 않을 터이니 괜히 헛수고 할 것 없다는 건가. 

  

제주 4·3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30여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4·3항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1988년 무렵부터 미국의 인정과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해왔다. 70주년이었던 2018년 10월에는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 관련 단체들이 4·3에 대해 미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10만9996명의 서명을 받아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달했다."(기사 중에서)


얼마 전 '노근리 사건'을 파헤쳤던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 지국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알려져있다시피 노근리 사건은 6·25 때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미국이 책임을 인정하고 주민들에게 배·보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미국 측은 노근리 건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까지 모두 뭉뚱그려 한 몫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언뜻 이마를 스친 게 있었다. 제주 4·3도 '한 몫'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미국의 철면피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저따위 행세는 박살내버려야 한다.  

일년 열두 달, 10년을 하루같이 끈질기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진상규명은 계속해 나가되 이제는 미국 책임 추궁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4월 3일이 지나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토요일 오후에, 도서관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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