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는 겉과 속이 똑같습니다
"왜 그렇게 불만이 많냐?"
지인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저는 불만이 많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했다가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에 접어든다.'
이 말이 얼토당토 않은 건가요.
형제 간에 우애좋게 지내야 하니 북녘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습니다.
옆집에서 굶고 있는데 먹다먹다 쓰레기로 버리는 짓은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흙을 파먹을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데 남아돌아가는 쌀을 창고에서 썩힌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北쪽 입장에서 사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건 北쪽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양심과 도덕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렇게 떠들고 다녔더니 돌아온 건 '친북기자', '종북기자' 심지어는 '빨갱이' 낙인찍기였습니다.
정년퇴직 무렵 한 선배분께서
"너같이 할 말 다하고 산 사람이 무슨 불만이, 무슨 후회가 있냐?"고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았다는 건 쓰고 싶은 기사를 맘껏 쓰고 살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냐, 너는 만족스러운 기자 생활을 했다는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저도 상당부분 공감했기에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기자생활 중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또 그 거짓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게
北 관련기사의 실상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北 관련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얼굴을 영상으로 보면서도 그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고 뭉개버리면 그걸로 끝나버립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례가 한두 가지입니까.
수박은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갛습니다. 사과는 겉은 빨간데 속은 흽니다.
홍시(紅柹)는 겉과 속이 똑같이 빨갛습니다.
뭐가 사실인지를 알면 그 사실을 그대로 기사로 쓰는 게 '홍시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北관련 기사의 경우 국가보안법이 있고, 앞서 예로 든 김학의의 경우 명예훼손 처벌 법 등 법적, 제도적 장애물이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단순명확하게 기사 쓰는 것을 완강하게 가로막는 자기검열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무슨 말인지도 모를 글을 쓰거나, 심지어는 기사쓰기를 아예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퇴직 후 심화가 들끓습니다. 재직 중에는 펜대를 쥐고 있었는데 퇴직 후에는 그게 없어져 버리니, 화를 배출할 수단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홧병보다 더한 우울증 아닌가 걱정도 들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내린 처방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할 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월, 목요일)은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제 주종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만'도 소재로 삼을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공감대역을 넓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