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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Mar 23. 2021

그 돈이면 집을 살 수 있어




작은 오피스텔 원룸 방한 쪽 싱글 침대에 아빠가 누우면 그 아래에 내가 눕고 그 옆에 언니가 누웠다 내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침대 아래 먼지와 아빠 발 각질이 소복이 쌓인  박스들이 보였고 언니가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싱크대 아래와 마주해야 했다. 방 어느 한 부분도 남김없이 살았다. 다 큰 두 딸과 아빠가 함께 살기엔 아주 작은집이었지만 울고 웃으며 견디며 살아냈다. 여유롭진 못했지만 지방에 자리를 잡은 엄마 덕분에  때때로 휴가를 가듯 엄마가 살 고 있는 옥천으로 향하기도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늘 격하게 반갑게 반겨줬다 엄마의 집 현관에 붙은 '자식에게 환영받는 부모가 되는 법'의 1. 자식에게 언제나 밝게 항상 웃으며 인사할 것을  외우고 반복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이다


엄마는 언제나 씩씩했지만 살아가는 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곤 그 해답을 꼭 나한테 써먹었다 영부인처럼 말하기와 같은 책을 보고 '차분하게 차분하게'를 마음으로 백번 외치고 말을 거는듯한 차분함으로 나를 불렀고 '내 안의 화를 다스리기' 같은 책을 보고 난 뒤, 내가 대들 때면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앙다문 채 '엄마 지금 참고 있으니까 알아서 조심하렴'의 뜻을 담은 호흡을 뱉었다 아마 엄마가 책에서 찾고자 했던 어려움이 자식 문제 내 문제였나 였던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친구같은 엄마도 아니었고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여자로서 살아보니 엄마는 책임감 있는 여자였다


그런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부담이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자식에게 환영받는 부모가 되는법' 마지막에 쓰인 10. 자식에게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 골골대는 소리를 하지 말라 늙어서 안 아픈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실행에 옮기기라도 하듯 엄마는 내게 징징거리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독을 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책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 했다. 그런  엄마의 책장엔 꽤 많은 자기 개발서적과 함께 언제나 재테크 책이 놓여있었다 엄마의 외출 가방에는 폈는지 안 폈는지는 알 수 었지만 강렬한 빨간색  표지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이 항상 들어있었다 고삼 시절, 엄마가 두고 간 엄마의 책장에 있던 재테크 책을 챙겨 학교에서 야자시간 쉬는 시간에 보며  나 나름의 돈 공부 인생공부 감정 공부를 했었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그런 책을 보고 있으면 기가 차했지만(결코 수업시간에 꺼내지 않았음)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엄마가 보던 대부분의 자기 개발서는 '여자! 독립하다!' 같이 스스로 자립을 독려 책이었고 재테크 책은 부동산 경매, 내 집 마련에 관련한 책이었다 갓 이혼을 한 엄마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책 내용에 대부분을 실행에 옮겼다


엄마는 여전히 씩씩하다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징징거리지 않으며 대부분의 것들을 혼자서 해결하고자 한다 자식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고 용감하게 세상과 맞선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막무가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용감하고 멋있어 보였다 그런 엄마의 자세를 닮고 싶었다


아빠의 월세방으로 언니가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참 막막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돈이 없었고 도망갈 곳이 없었고 내가 떠나면 언니를 혼자 감당할 아빠가 불쌍했다 내 주머니엔 엄마가 준 청주 지하방 전세 보증금 2천만 원이라는 돈과 불편하게 번 몇백의 돈이 있었지만 그건 엄마가 준 나를 위한 돈과 내가 열심히 번 돈이지  가족을 모두를 위한 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집 한편에 방을 내어줄 수는 있지만 언제 돌려받을지도 모르는 전세보증금으로 다 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그 돈이면 집을 살 수 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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