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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Mar 18. 2021

언니가 돌아온 이유







대학교 4학년 직업체험 실습 3개월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청주 원룸엔 한기만이 돌았다 이제 정말 가야 할 곳을 정해야 했다 서울로 간다면 나의 주거지는 다시 고시원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체한 것처럼 목이 컥, 하고 막혔다 정말도 살만했던 고시원은 다시 생각하기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견뎌야 하는 것 투성이었다 바퀴벌레와 같이 쓰는 부엌, 물이 잘 안 빠져 발목은 계속 물에 잠기는 화장실, 좁디좁아 엉덩이를 스치지 않고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날 수 없는 복도, 서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훌쩍거리면 신경질적으로  벽 '쾅' 두드리는 그런 곳이었다  누우면 책상 아래로 들어가는 내 다리와, 내 머리 위로 늘어진 옷 아랬단들을 보고 있노라면 관속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싫었다. 다시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그렇게 감사하게 여겼던 그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자니 끔찍하기만 했다


이읔고 원룸 방을 빼는 날 엄마는 나에게 청주 원룸 보증금 2천만 원을 건네며 나에게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인데 너 그거 지금 줄까?'라고 물었고 나는 숨도 안 쉬고 그 돈을 받기로 했다 큰돈이 나에게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그 돈으로는 서울에 원룸 전셋값의 절반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2천만 원은 지금도 여전히 큰돈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에 전셋값의 문턱에도 못 간 작은 돈이었다


물론, 월세 보증금으로는 충분했지만 나는 매월 월세를 벌어드릴 자신이 없었다

졸업 후에도 오디션을 봐야 하고 오디션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날 부르는 게 아니라서 일정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하루 일당으로 돈을 벌어 매달 살아야 하는 주거비를 마련해야 했었다. 반복이었다 재수를 해서 대학엘 갔고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깟 20만 원이 30만 원이 내 꿈을 짓밟았다 생계 따위가 뭐길래!  뭐 대단한 거 하고 싶어 한다고! 이렇게 나를 좌절시키나 매일 서러웠다 가난이 싫었다그래서 다시 아빠의 작은 월세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도 싸놓았던 짐을 다시금 푸는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미안함 고마움 그쯤 어딘가의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아빠의 방 한켠을 내어준 아빠에게 고마웠다


엄마가 마련해준 2천만 원이라는 돈은 여전히 나의 주머니에 있었다 단 1만 원도 까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디션을 준비하며 새벽에 문을 여는 헬스장에서 새벽일을 맡아 일을 했다 회원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에게는 회원을 가르치는 자격이 없었지만 헬스장의 사장은 나에게 괜찮다며 가르쳐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했다. 회원들에겐 거짓말로 트레이너라 말하며 돈을 벌었고 아르바이트 시급보다는 많은 돈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센터의 몫이 되었다. 나에겐 운동을 가르칠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이 참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돈만 벌었다 그렇게 돈을 벌다 보니 배우가 하고 싶다던가 무대에 서고 싶다던가 하는 꿈은 옅어졌다  그러다 다시 일하던 극장에 계약직으로 일  할 수 있었다 거짓 없이 일하고 싶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돈을 좇는 인간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헬스장 문을 박차고 나와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 주변을 맴돌면서 1년의 시간을 지냈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작은 원룸에서 지냈고 매일 하는 정기공연에 조명 스텝으로 일할 뿐이었다 딱히 꿈을 이룬 것도 아니었고 제대로 된 취업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편안했다 비록, 비흡연자인 내가 흡연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내 옷에선 담배 쩐 내가 나고 때때로는 담뱃재가 자욱한 모자를 쓰고 출근을 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상 덕 보러 간 언니가 돌아왔다 나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 일까? 어려서는  천주교 신자인 엄마를 따라가 성당엘 갔고 미사 시간엔 반강제로 옆에 앉아 기도 흉내를 내고 (당시 가장 유행했던 만화) 네티가 쓸  것만 같은 하얀 미사포를 쓴 엄마가 공주님 같아 보여 나도 저걸 써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신부님이 나눠주는 하얀 사탕이 나에겐  왜 허락되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투덜거렸고 미사가 끝나면 엄마가 사주는 붕어빵이 좋아서 늘 주일엔 엄마를 따라나섰다


지금도  하나님의 성체를 받아먹을 수 있는 자격은 나에게 없지만 나 스스로를  천주교 신자라고 믿는다 그냥 성당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게 진짜 종교가 주는 편안함인지는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주일날 활기찬 시장을 지나 성당 마당으로 들어서면 따뜻한 햇살  속에 서있는 마리아상을 보며 성호를 긋고 성도들과 밝게 인사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한테 종교는 이 정도의  기억이다 꽤 오랜 시간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은 내 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티브이 위에 책상 위에 또는 책장 한편에 늘 있었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함께 사는 남자가 무교인지라 두지 않았다 특별히 둬야겠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건 지나온 시간 동안  나에게  종교라는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언니는 대순진리회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이비 종교이고 또 대순이라고도 부르며 대순진리교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대순이라고 불렀고 나는 언니 종교라고 부른다


과거  나와는 다르게 공부만 했고 공부를 잘했고 큰 반항 없이 자라온 열아홉의 나의 언니는 스무 살에 무리 없이 원하는 대학엘 갔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너무 달랐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시간이었겠지만,  언니에게는 갑작스러웠을 엄마 아빠의 이혼과 함께 궁핍해진 생활 속에서 언니는 꽤 깊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  불현듯 다가온 낯선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언니를 위로했을 것이다 상냥하고 포근하게 내미는 손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배가  고픈 그때의 언니에게 든든히 먹을 음식 건네며 ' 조상님에게 기도를 드리면 조상님이 너의 가족을 지켜줄 거야'라는 말을 믿게 했을  것이다 가족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났지만 그때의 언니가 할 수 있는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 그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탓하지 않는다  탓할 것이 없다'


그때의  언니를, 그때 언니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한 우리의, 가족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언니가 집을 나간 채로  수년이 흘렀다 간혹 엄마나 아빠에게 연락을 해왔던 것 같은데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때때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뉴스나 다큐 멘 터리 또는 드라마를 보면서 과몰입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가끔 한 번씩 언니를 떠 올릴 뿐이었다   


서울에서  아빠의 작은 월세방에서 살 때 언니는 큰 가방을 든 채로 돌아왔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집을 나간 언니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왔다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었다 예쁘거나 못생겼거나의 모습이 아니라 혼이나 간 차였다 이후로도 언니는 보살핌이  필요했다 아빠는 오롯이 언니를 감내했다 때때로 그런 언니가 버거운 날엔  방 한편에 머리를 기대어 앉아 담배를 태우며 눈물이 얼굴  주름을 타고 흐를 새도 없이 닦아내었다 '사람들에게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인간이  가장 나약할 때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당연한 것들로 빼앗긴 시간의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일상적인 것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가장 괴롭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괴롭거나 슬프지 않다 일상을 앗아가는 종교는 나쁘다 가족의  일상을 앗아간 종교는 나쁜 거다 언니의 십 년을 망가뜨린 종교는 나쁘다 그 종교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앞세워 그분들 앞에 무릎꿇기전에 더 앞서 있어야 하는 것은 진짜의 대상인 상대에게 진심을 말 할 수 있어야하고 고단한 나를  스스로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없이 종교만 있는건 가짜로 느껴진다. 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스스로의 일상이  있다면 그 일상속에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종교가 됐든 됐다고 본다


상대의  재산을 탐닉하고 시간을 뺏어가며 사회적으로 고립을 시킨다면, 가족과의 단절과 개인의 일상을 앗아가고 거짓과 달콤한 말뿐이라면  그것은 아니다. 지금의 언니의 종교는 강요도 탐닉도 고립도 달콤한 말도 없다 여전히 언니종교의 종류는 마음에 안들고, 가끔씩  판단력이 흐려지는 언니를 보면 화가나기도하고 성질도내긴하지만나는 언니의 종교를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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