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주 고객층은 누굴까?
다른 곳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바하는 곳에서는 잼민이들이 주 고객층이다.
*여기서 잼민이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가족들과 오는 잼민이들, 친구들과 오는 잼민이들, 애기들과 와서 허세 부리는 잼민이들 종류는 다양하다.
이 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는 잼민이들은 양반이다. 그 아이들은 적어도 청소를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가족들과 함께 오면, 먹고 싶은 것들을 못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편의점에 들어오면 다양한 것들이 소비자들을 붙잡는다. 심지어 성인들도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카운터에 물건들을 올려놨다가 계산을 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성인들도 고민을 하거나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내가 알바를 하는 요일과 시간대가 주말에다가 오후여서 그런지 자녀들과 오는 부모 손님들이 많다. 그 손님들은 대개 어디 놀러 가려고 차를 앞에 대고 있는 상황이어서 빨리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빨리 고르라고 재촉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괜히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 물론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천천히 기다려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부모님들이 더 많다.
어느 날 소풍을 가기 딱 좋은 날씨에 남자애기랑 여자애기를 데리고 편의점에 들른 부부가 있었다. 아빠는 대충 고르고 카운터에 서있었고, 엄마는 계속 아이들을 재촉하면서 따라다녔다.
"빨리 골라. 시간 없어."
엄마의 말에 아이들이 서둘러서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야, 이건 못 먹는 거잖아. 먹으면서 갈 수 있는 거를 고르라고!"
아이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엄마를 올려다봤다.
"안돼. 다른 거 골라. 이거 맛있겠네. 이거 골라."
엄마는 바로 그 앞에 있는 아무거나 집으며 아이에게 강요하듯이 말했다. 나는 그 부분이 아이에게 너무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애초에 그렇게 골라서 줄 거였으면, 데리고 나오지 말지. 괜히 희망고문을 시키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산해 주세요."
라는 엄마의 말에 카운터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봤는데, 아이들이 먹을 것들은 거의 없었다. 시간이 없다고 재촉했기 때문에 결국 아이들은 먹고 싶은 걸 사지 못한 채로 나갔다.
또 어떤 날은 이런 적도 있었다.
"어? 이거 뭐야? 맛있겠다!"
엄마랑 같이 온 여자 애기가 사탕을 집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한 반대였다.
"안돼, 이것만 계산해 주세요."
엄마는 바로 필요했던 생필품만 구매한 뒤에 애기를 데리고 나간다.
내가 이해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불량식품이 어린 아기들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안 사줄 거였으면, 데리고 오지 않는 게 아이들한테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말이라도 예쁘게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희망고문을 당한 아기들은 마상일 것이다.
이처럼 부모님이랑 같이 오는 아이들은 나에게 물리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애교를 부리거나 말을 걸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때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온 잼민이들은 들어올 때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소를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거나 정신이 없어서 계산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를 신경 써야 한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왔을 때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
먼저, 여자아이들끼리 온 경우에는 마치 아침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경우가 많다. 주 이야기 내용은 또래 친구들 이야기이다. 영화 '가십걸'이 떠오르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 정말 추천한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미국 하이틴 멜로드라마 중에서 제일 재밌었다.)
어느 날 여자애 3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컵라면과 삼각김밥, 간식 등을 계산한 후에 챙겨서 자리로 갔다. 그리고 막 떠들기 시작하는데, 어른들의 대화인 줄 알았다.
"야, 아까 연지 걔들 나가는 거 봤어?"
"어, 야 우리 눈치 보고 나가던데."
"그니까, 우리가 이김. 걔네 쫄아서 나간 거잖아."
"야, 걔네들 소문 개 안 좋잖아."
"아 그니까, 걔 남자애들한테 꼬리 친다고. 꼴 보기 싫어."
"아 진짜?"
그때, 띠링-하는 소리를 내며, 또 다른 여자애가 들어왔다. 그 아이가 들어오면서부터 나는 그 여자아이들 무리와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었었다.
"하이 티비."
"아, 진짜 그거 뭐냐. ㄹㅇ(레알) 킹 받네."
"야, 맞다. 우리 아까 연지무리 봄."
"헐 대박 티비."
"그래서 걔네가..."
그렇게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시작했다.
이야기 내용 자체가 아침 드라마스러워서 집중해서 듣게 됐다. 그 후에는 남자애들에 대해서 막 얘기를 했다. 누가 잘생겼고, 누가 별론지.
몇 분 동안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은 간식을 몇 개 고른 뒤에 나갔다. 지금까지 급식체를 잼민이들이 쓰는 걸 육성으로 들어본 적이 처음이서 신기했다. 그동안에는 잼민들이 진짜로 급식체를 안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진짜 잼민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애기들이 욕도 많이 알고, 대화 주제도 성인들이 할 법한 내용이어서 좀 애매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같은 날 남자애들이 들어왔다. 막 각자 허세를 부리며, 말을 하는데 너무 하찮아 보이고, 귀여웠다.
"야, 행님이 사준다."
"헐, 야 민준이가 쏜대!"
"행님, 감사합니다."
우르르 물건을 내려놓고, 계산을 한 후에 자리에 가서 앉더니 막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난하게 게임얘기를 하다가 같은 반 여자애들, 이어서는 여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게임얘기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또래 여자애들 얘기부터 귀가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야, 니 사귀는 애 왜 만나냐?"
"왜?"
"너무 못생김.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
"그렇긴 한데, 착하잖아."
이 대화를 듣는데, '초딩으로 보이는 애들이 벌써 할 말은 아니지 않나'싶었다. 신기하면서 웃겼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고, 질이 나쁜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여친이라는 애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초딩이 저렇게 말을 했다는 게 너무 웃겼다. 거기에다 남친이라는 애가 실드를 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서 너무 귀여웠다.
그날 느낀 점은 초딩이랑 잼민이들이 사는 세상과 성인들이 사는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그런 모습들이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창 떠들다 인사까지 하고 나간 애들 자리에는 남긴 컵라면과 삼김 껍질, 책상에 흥건한 라면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모든 남자 애기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먹고 남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려서 치우는 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편의점에 들어오는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인사성이 밝았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모두들 인사를 잘하고 나간다. 하지만 먹고 난 후의 뒤처리는 좋지 않다. 부모님들이 치워줘서 그런 건지, 코로나19로 편의점에서 먹고 치워야 하는 걸 모르는 건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너무 아쉽지만, 아이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정말 가관이다. 너무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애기들이라는 생각에 참을 인자를 되새길 수밖에.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가게를 나감과 동시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간다.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나가서 대신 버려준다. (살짝 킹 받는 점은 내가 치우는 걸 뒤돌아서 본 후에도 다른 날 똑같이 쓰레기를 투기하고 간다는 점이다.)
내가 알바하는 곳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위 층에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다니는 애기들이 자주 들른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주말에 알바를 하다 보니 더욱 자주 보게 되는데, 귀여운 아가 손님들이 자주 온다. 그 손님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려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