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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편선 Apr 30. 2023

5. 용감한 아가 손님덜

 알바를 하다 보면,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그중에서 제일 시선이 많이 가고, 기억이 많이 남는 손님은 애기 손님들이다. 전편에서 다뤘던 잼민이 손님들과는 살짝 결이 다르다. 잼민이 손님들은 진짜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사이이고, 애기손님들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이 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아기 같은 느낌을 많이 주는 행동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손님은 위층에 있는 교회를 다니는 여자 아기 손님이다. 이 아기 손님은 어른들이랑 자주 왔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현금을 들고 와서 결제를 하고 가게 됐다. 혼자 와서 현금으로 결제할 때마다 너무 귀여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와서 과자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손님들이 물건을 고를 때, 자리에 들어가서 앉아있는 편이었다. 오랫동안 고르는 손님들도 있었고, 내가 쳐다보는 것 때문에 눈치를 보는 손님들이 있을까 봐였다. 그렇게 평소처럼 앉아서 아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애기손님이 양손 가득 간식들을 들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나는 일어나서 간식들의 바코드를 찍었고, 아기손님은 조용히 3천 원을 내밀었다.                                                                             그 간식들을 모두 찍었더니 4,200원이 나왔다.



"지금 1,200원이 부족해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 돈으로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고민을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내 말에 아기 손님은 민망한 듯 웃고는 간식들을 도로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른 간식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식들을 거의 골라갈 때쯤에 교회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던 어른들이 가게에 들어왔다. 다른 손님이 더 오게 되면, 돈이 부족해도 내가 대신 내줄 수가 없다. 그렇게 초조하게 어른손님들이 빨리 계산을 하고 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어! 예빈아 안녕. 여기 있었네."

"네ㅎㅎ"


 아기손님은 아까 돈계산을 제대로 못한 것 때문에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 평소에는 맑고 높은 목소리로 크게 대답을 잘했다. 간혹 가다는 애교도  부려주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높지 않은 목소리가 너무 신경 쓰였다. 그때, 그 어른 손님들이 물건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예빈아, 간식 사줄까? 얼른 이리 와."

"괜찮아요..."


"예빈이 뭐 먹을지 아주 행복한 고민 중인 것 같은데?"

이 말에 옆에 있던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지금 행복한 고민 중인가 보네."


 어른손님들은 당연히 애기의 사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뭘 먹을지 결정하느라 계산을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정을 알기 때문에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진짜 안 사줘도 돼?"

애기가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알았어, 올라가서 기다릴게."

"안녕, 이따가 봐!"

그렇게 어른 손님들이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내며 나갔다. 애기 손님과 나만 남게 되자, 애기 손님이 고른 과자들을 가지고 왔다. 저번보다 부피가 작아진 과자들에 나는 괜히 애기손님한테 미안했다. 이번에 나온 금액은 3,800원이었다. 이번에는 800원이 부족했다. 


 그때! 시끌시끌 떠들면서 교회에 다니는 잼민이들이 몰려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잼민이들 앞에서 애기손님 꺼를 사주게 되면, 잼민이 손님들도 사줘야 될 것 같아서 또 죄송하다고 800원이 부족하다고 거절하게 되었다. 정말 너무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민망할 것 같은 애기 손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더 그랬다. 


"800원이 부족해요."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자 애기 손님은

"넵...(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민망하다."

라고하고 간식들을 품에 안고 과자 코너 쪽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진짜 고민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잼민이 손님들의 계산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이 교회에 다니는 잼민이 손님들은 인사성도 밝고, 귀여운 손님들이다. 게다가 여자애기 손님보다 나이가 많다고 오빠 노릇을 하는 부분들이 너무 귀여웠다. 


"예빈아, 오빠가 사줄까? 지금 사줄게."

이번에도 아기 손님은 거절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잼민이 손님들이 밖으로 나간 후에 아기 손님이 더 부피가 작은 과자들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얼추 비슷한 가격대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역시 3천 원을 넘는 가격이었다. 


"100원 정도 부족한데, 이건 제가 내드릴게요."

"..."

"가져가시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애기의 입장에서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서 후회가 된다. 괜히 얼마 대신 내줬다고 하면 신경 쓰일게 뻔한데, 그걸 생각을 못했다. 차라리 가격을 딱 맞춰서 가져왔다고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할 걸 그랬다. 그것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그냥 사줄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괜히 애기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서 걱정도 됐다. 나한테 거절을 당할수록 부피가 점점 작아지는 과자들에 마음이 너무 쓰였다. 


 물론 모든 아기 손님과 잼민이 손님들의 간식을 대신 내주는 건 아니다. 자주 사러 와서 눈에 익은 손님들 중에서 정말 너무 필요해 보이는데, 못 사는 경우에만 몇 번 도와줬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살짝쿵 도와줬는데, 타이밍이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아가손님이 혼자 와서 결제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바하는 시간 동안은 말이다. 그 아가손님을 너무 챙겨주고 싶었지만, 아마 그때의 일 때문에 겁을 먹고 혼자 결제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도 추측이긴 하지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아가야 정말 미안해ㅜㅠ. 


 또 다른 아가손님들은 정말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손님들이다. 어느 날 알바를 하는데, 부모님과 함께 들어온 6살 좀 되어 보이는 아기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왔다.


"여기서 마스크 벗어도 돼."

엄마가 라고 말하면서 애기의 마스크를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아기 손님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거부를 했다.

"안돼. 안에서도 써야 돼."

애기 손님은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면서 간식을 고를 때에도, 계산을 기다리 때에도, 밖에를 나갈 때에도 마스크는 애기손님과 한 몸이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너무 귀여웠다. 


 이런 식으로 간혹 가다가 알바 중에 나타나는 아기 손님들은 나를 힐링해 준다. 지금까지 모든 애기손님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카운터에 간식을 올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얼른 이모한테 드려."

"싫어, 갖고 있을 거야."


"씁- 얼른 이모한테 드려야지. 그래야 먹을 수 있어요. 얼른 내려놔."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애기 손님들은 카운터에 간식을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힝구가 된 표정은 덤이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너무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바코드를 찍은 다음에는 결제를 하지 않았더라도 우선 아가손님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면 세상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간식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도 나한테 말을 걸 때가 있다. 갑자기 막 간식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떤지. 그러면 나는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드러난 부분으로 최대한 행복한 미소를 표현하려 애쓴다. 아가손님들이 이 편의점에서는 슬픈 기억 따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진상손님들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아가 손님들이나 잼민이 손님들을 통해서 행복하기도 하다. 이렇게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귀여운 아가, 잼민이 손님들이 행복을 줘서 알바를 할 맛이 나는 것 같다. 


 다음 편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제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미 많이 퍼진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우리 편의점만의 독특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내용에 대해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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