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정: 없음

오후 반차

by 두디


이유 없는 반차를 썼다.


특별한 일정도 없고,

딱히 해야 할 일도 없었지만

그냥, 정말 그냥 쉬고 싶었다.


오전에 자료를 만들고, 팀 미팅을 하고,

파트너사와 통화를 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12시 반.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세차게 비가 내렸는데,

마침 점심 무렵엔 딱 그쳐 있었다.

그 덕분에 비 온 뒤의 흙내음을

즐기며 퇴근할 수 있었다.

비에 젖은 풀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살랑이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길가에는 다른 회사 사람들도 보였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식사 후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오늘만큼은 그렇다.

그 생각 하나가 마음을 크게 놓이게 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배달앱을 켜고

나를 위한 작은 만찬을 주문했다.

텐동.

‘이유 없는 쉼’을 축하하기에 더없이 좋은 메뉴였다.


집에 도착하여 불을 켰다.

고요한 적막이 나를 반겨주었다.


가장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고 화장을 지웠다.


포근한 침대 위에 배드 트레이를 올려두고

따끈한 연근튀김을 간장에 찍어 한입.

아삭과 바삭, 그 사이 어딘가의 식감이

입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리뷰 이벤트로 받은 사이다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해주었다.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니

바람이 싣고 오는 향기들이

오늘따라 더 신선하고 다채로웠다.

그 바람 틈에서

나는 그저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일정도 없는 나른한 오후.

나에게 꼭 필요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문득 요즘 너무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와중에는 나의 상태를 살필 틈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일은 결국 인생을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적인 수단이다.


그 수단이 목적으로 변해버리는 순간,

삶의 의미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이 모든 상황의 주체는

결국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같은 이유 없는 쉼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아무 이유 없는 오후가 오히려

나에게 가장 분명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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