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좋아하세요?

빗소리가 주는 행복

by 파이민

난 7살에 내 집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마른땅을 찾아 바람처럼 달려갔다. 개척지에 도착한 우리는 신속히 우산을 폈다. 그리고 아기 새 마냥 고개를 들어 하늘 보이는 곳을 메꿔나갔다. 비 새는 곳이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그제야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각자의 우산대를 붙잡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던 그곳은 너무나도 안락했다. 좁은 집이었기에, 행복의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난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빗소리'가 참 좋았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아쉬움과 그리움에 '빗소리'를 더 기다리고 만나고 사랑해 본다. 빗소리는 비가 만나는 상대에 따라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아스팔트를 만난 비는 '탁탁' 부딪히다, 이내 '촤아아' 퍼지는 물소리로 변한다. 흙을 만난 비는 '톡톡' 두들기다 너른 품 속으로 '스르르' 파고든다. 우중 캠핑의 텐트 안은 콘서트홀 못지않다. '타닥타닥' 가벼운 연주를 시작하다, 빗줄기가 거세지면 '퍽퍽' 힘 있는 연주로 변한다. 종잡을 수 없는 리듬으로 천장과 벽면을 두들기기도 한다. 한껏 흥이 차오를 땐, 관객석에 물까지 뿌려준다. 역시, 40억 만년 경력의 베테랑 연주자답다.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은 강철과 알루미늄 합금으로 이루어진 차 천장과 처음 만난다. '톡톡', '탁탁', '후드득'. 반가운 듯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속삭인다. 그 대화를 엿듣는 즐거움이 꽤나 쏠쏠하다.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비는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까지 만족시켜 준다. 경사면과 만난 비는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 모습에 감동 반, 안타까움 반의 감정이 일어 내 마음과 같이 앞 유리가 뿌예진다.


차 안에서 빗소리와 함께 독서를 즐겨본 일이 있는가?

난 비 오는 날 종종 책을 들고 차로 향하곤 하는데, 상당한 낭만이 있다. 글과 소리의 운율을 즐기며, 나만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허기짐이 밀려온다.

수영하며 빗소리를 즐겨본 일이 있는가?

물속에서 들려오는 물과 물의 만남이 자아내는 둔탁한 울림은, 마치 어머니의 뱃속 시절, 외부의 소리를 경청하던 나를 상상하게 한다.

빗소리를 즐기다, 온몸으로 비를 느끼고자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본 일이 있는가?

1980년대 비 내리던 어느 날,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맘보슈퍼 앞 길거리는 유난히 반짝였을 것이다.

이처럼, 빗소리를 기다리고 만나고 사랑하다 보니, 함께 즐기고 싶은 것들이 늘어간다. 아니, 빗소리와 함께 하는 것들이 새롭게 소중해지는 것일 테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울림이, 그저 고맙다.


빗소리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봄여름의 빗소리는 농부들의 마음을 기대케 하고, 예보 없이 시작되는 빗소리는 거리의 연인들을 설레게 한다. 우산집을 짓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를 주며, 중년의 어른들에게는 오래된 추억의 창을 열어준다.


3월의 봄비는 어떤 행복을 가져다줄까? 벌써부터 그 만남이 기대된다.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빗소리를 기다리며,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수십 년 간 즐거움을 준 빗소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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