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순간

나는 거북이

by jooni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친구들과 어른들이 부러웠다. 나는 항상 말이 느렸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눈앞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그런 나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엔 맨 뒤에 앉은 학생 이상의 존재감이 없었고, 직장을 다닐 때도 상사나 동료들의 의견과 지시에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게 군대는 전환점이었다. 병사로 입대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간부가 되기까지, 실수하고 반성하고 부딪치며 깨달은 것들이 쌓였다. 군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

군대에서 나는 느림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내 느림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타인의 지적과 비교에 흔들리지 않는 법도 조금씩 터득해 갔다. 나와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 저마다의 삶의 방향과 생각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시기와 미움, 분노와 억울함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내 느림을 인정해 주었던 사람들, 그것을 장점으로 받아들여 준 사람들. 그들이 건네준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에 성장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가.

계급이 오르고 연차가 쌓이면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아마 초심일 것이다.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어느새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토록 싫었던 '빨리빨리'를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느렸던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느림을 꽃피우게 해준 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받았던 배려와 관심과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누어야 할 때임을.

느림이 부끄럽지 않게 된 것은 혼자서 이루어낸 일이 아니었다. 함께한 이들을 통해서였다.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함께하며 깨닫는 것이 더 크고 깊다고 믿는다. 앞으로 내가 어떤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느끼며 성장할 것인지. 내 느림이 부끄럽지 않은 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평생 이어가야 할 공부라는 걸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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