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나는 참 많이도 했다.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막상 급한 일을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안다. 돌아가기는커녕 허둥댔고, 서두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말과 행동 사이의 그 거리가 늘 부끄러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급한 일이라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걸까? 타인의 요구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오래 들여다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기준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깊이 생각하기 싫어서, 마주하기 싫어서, 그저 회피하려는 마음이 모든 일에 '급하다'라는 이름표를 붙여만 왔다. 가짜 기준이 만들어낸 가짜 긴박감이었다.
여유는 누구에게나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직접 행동하고 부딪혀본 사람만이, 그 경험의 두께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먼저 묻기로 했다. 지금 이 일이 정말 급한가. 내 삶과 죽음에 직접 닿아 있는가. 되돌아보면 그런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일로 남았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세워보았다. 급한 일이란,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고. 단순하지만 이 기준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급하다고 여겼던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우선순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는 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최선을 다하고도 안 되는 일은 내려놓을 용기도 조금씩 생겨났다.
급한 일 앞에서 잠시 멈춰보자. 그 일이 내 기준에 어떤 일인지,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나의 판단으로 먼저 살펴보자. '급한 일'이라는 이름표를 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라진다. 그 자리에 새 이름을 붙여보자. 나를 성장시킬 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일. 그런 이름이라면 기꺼이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여유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내가 직접 마주하고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이제는 몸에 새겨두려 한다.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