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사람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하얀 백지 위에, 혹은 노트북의 빈 화면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적어 내려가게 될 줄은 몰랐다.


쓰기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글재주도 없을뿐더러, 글감이 될 만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마음, 그 용기를 품을 수 있었던 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가는 작가"라는 문장을 만난 뒤였다.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내 삶의 주인이자 내 삶을 써 내려가는 작가이다.” 스스로에게 외친 그 고백이 비로소 나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미 쓰며 살고 있다.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메시지도, SNS에 올리는 몇 줄의 글도 모두 쓰기이며, 나를 담고 함께 공감하고 나누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쓰기를 '작가'라는 이름의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인지도, 멋진 문장, 깨달음을 주는 글만이 쓰기의 산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이다.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기는 더 이상 나와 먼,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나의 가장 단단한 갑옷이자,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누군가에게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정체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를 꺼내놓는 것이 곧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착각, 그것이 쓰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다.


쓰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비교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고, 그 인생은 저마다 다르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른 것처럼.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모순 또한 이해해야 한다. 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까닭은 같은 과정, 같은 감정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도 쓰기를 다짐한다. 그것은 내 삶을 전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는 만남의 자리로 한 걸음 내딛겠다는 용기이다. 쓰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그 망설임이 사실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두려움을 넘는 방법은 결국 행동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갈 권리를 가진 작가임을 기억하자.


오늘, 지금, 내 이야기를 적을 용기로 펜을 들어보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펜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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