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시대, 생산의 빈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하루가 끝나고 돌아보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영상을 보고, 기사를 읽고, 누군가의 글에 감탄하고, 또 다른 영상으로 넘어갔다. 손가락은 쉴 틈 없이 움직였고, 눈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따라갔다. 그렇게 하루를 가득 채우고 나면, 충분히 무언가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 내가 만들어낸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진 않은가?


우리는 소비에 최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콘텐츠는 끝없이 흘러오고, 클릭 한 번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운 것 같고,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소비는 아무리 많아도 나를 바꾸지 못한다. 감동은 순간이고, 자극은 곧 휘발한다. 스쳐 간 수천 개의 문장 중에 오늘 저녁 단 한 줄이라도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소비는 채우는 것 같지만, 실은 흘려보내는 것에 가깝다.


생산은 다르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그 한 줄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빌려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내 언어로 꺼내 놓은 것이다. 그 과정은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머릿속에서는 또렷했던 생각이 문장이 되는 순간 흐릿해지고, 마음속에서는 분명했던 감정들이 글 위에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소비보다 생산이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거친 한 줄만이 진짜 내 것이 된다.


소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을 읽고, 깊은 영상을 보고, 타인의 경험에 귀 기울이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문제는 소비가 생산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이다. 많이 읽으면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많이 보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될 거라고. 하지만 몸에 좋은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붙지 않듯, 소비만으로는 자기 목소리가 생기지 않는다. 읽은 것을 내 언어로 한 번이라도 옮겨보는 일, 그 한 걸음이 소비와 생산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


나는 오랫동안 소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밑줄 친 문장은 책 속에 남아 있을 뿐, 내 안에는 남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단 한 줄이라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서툴고 부족해도, 내 손으로 만들어낸 한 줄은 밑줄 친 백 개의 문장보다 오래 남았다.


소비의 시대에 생산하는 사람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넘쳐나는 콘텐츠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추어, 오늘의 나를 한 줄로 꺼내 놓는 일. 그 작은 생산이 결국 나를 소비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다.


내게 생산이란 결국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쓰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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