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이야기가 떠돌고, 가슴 한편에는 꺼내고 싶은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빈 화면 앞에 앉으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쓴 뒤에 올 시선이 두려웠다. 누군가 읽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어쩌지? 별것 아닌 글이라고 여기면 어쩌지? 쓰기도 전에 평가를 먼저 상상하고 있었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교묘하게 작동한다. 직접 무섭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 "아직 준비가 덜 됐어." "조금 더 공부하고 나서." "지금은 때가 아니야." 모두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말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하나같이 같은 곳에 닿는다. 부족한 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시작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평가받는 순간을 미루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시작을 회피하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들었다. 쓰지 않기 위해 바쁜 척했고, 다른 일을 먼저 하며 합리화했다. 책상을 정리하고, 자료를 모으고, 참고할 글을 읽었다. 전부 쓰기 위한 준비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쓰지 않기 위한 우회였다. 쓰는 일보다 쓰지 않기 위해 들이는 힘이 더 클 때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평가가 두려운 이유를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결국 내가 두려워한 것은 타인의 시선 그 자체가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확인하게 될 나의 부족함이었다. 혼자 품고 있을 때는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것이, 글로 꺼내는 순간 현실이 된다. 그 현실이 내가 바라던 모습과 다를까 봐, 차라리 가능성인 채로 두고 싶었다. 쓰지 않으면 실패도 없으니까.
하지만 쓰지 않는 것이 정말 안전한가? 평가받지 않는 대신, 나는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가? 부족함이 드러나지 않는 대신, 나다움도 드러나지 못했다. 실패하지 않는 대신,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평가가 두려워 시작하지 않는 삶은, 안전한 것이 아니라 멈춰 있는 것이었다.
완벽한 준비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평가는 피할 수 없고, 부족함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을 견디는 힘은 시작하는 데서 온다. 첫 문장이 서투른 것은 당연하다. 서투른 첫 문장 없이는 어떤 글도 완성되지 않는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쓰기 시작해야 두려움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오늘도 빈 화면이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떨린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쓴 첫 문장이, 결국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오늘, 지금 두려움과 함께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