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면, 가장 자주 듣는 대답이 있다. "생각이 좀 더 정리되면 쓰려고요." 나도 오랫동안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은 아직 뒤죽박죽이니까, 조금 더 생각이 가지런해지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명확해지면, 그때 쓰겠다고. 그 말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들렸다. 정리도 안 된 생각을 함부로 꺼내면 안 되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기다린 '그때'는 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석 달이 지나도,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흐릿해졌다. 처음에는 어렴풋이나마 윤곽이 있었던 생각이, 쓰지 않고 품고만 있으니 점점 형체를 잃어 갔다.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지경이 되어서야, 정리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정리를 핑계로 시작을 미룬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한 뒤에 쓰겠다는 말의 함정은, 생각과 글의 순서를 거꾸로 믿고 있다는 데 있다. 먼저 생각이 완성되고, 그 완성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써 보면, 순서는 반대다. 쓰기 전에는 분명하다고 믿었던 생각이 막상 문장이 되면 흔들린다. 하나라고 여겼던 것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확신했던 것이 의외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혹스럽지만, 그것이 생각이 정리되는 과정이다. 글이 생각을 정리해 주는 것이지, 정리된 생각이 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은 매일 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막연히 외로움에 대해 쓰려고 했다. 머릿속에는 외롭다는 느낌만 둥둥 떠 있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 상태로 첫 문장을 썼다. "요즘 자꾸 외롭다." 쓰고 나니 궁금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한 문장을 더 썼다. 그러자 외로움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쓰기 전에는 뭉뚱그려 하나였던 감정이, 문장 위에서 층위를 드러냈다. 정리가 되지 않아 못 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아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려는 것과 같다. 아무리 밖에서 팔다리를 움직여 봐도, 물속의 감각은 물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굴려 봐도, 문장이 되어 보지 않은 생각은 정리될 수 없다. 써야 비로소 보이고, 써야 비로소 갈래가 잡힌다. 그러니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정리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 첫 문장을 꺼내 보자. 엉망이어도 좋다. 그 엉망인 첫 문장이 두 번째 문장을 부르고, 두 번째 문장이 방향을 잡아 주고, 어느새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이 글 위에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 쓰는 것이 곧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