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는 일요일

by 유하루

창문으로 햇살이 고즈넉이 스며들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하늘은 어제보다 훨씬 맑았고, 공기에는 주말 특유의 느긋함이 배어 있었다. 일요일 아침, 침대는 조금 늦잠을 부린 세 사람의 체온으로 포근하게 데워져 있었다. 나는 남편과 은찬이 사이에 끼여 누워 있었다. 자주 사용해 보풀이 일어난 이불은 부드럽기 그지없었고, 낮은 베개는 목을 꼭 감싸 안아줘 마치 품에 안긴 듯한 안정을 느끼게 했다. 영호는 말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깜빡였다. 그 곁에서 은찬이는 이불속에서 머리를 질질 끌며 꿈틀거리다가 어느새 영호의 배 위에 올라탔다.


“아빠 배는 풍선 같아~”


나는 피식 웃었다. 영호는 배를 꿀렁이며 은찬이를 통통 튀게 했다.


“자, 출발합니다. 은찬 항공, 목적지는 하늘 저 너머!”


“히히히, 아빠. 아니, 기장님 무서워요~!”


토요일까지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영호에게, 일요일은 단 하루뿐인 안식이다. 아픈 동물들, 눈물 머금은 보호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실수 하나 없는 진료를 해내야 하는 팽팽한 삶. 주 5일제, 주 4일 제라는 말은 그에게 먼 우주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일요일 아침만큼은, 침대 위에서 이불과 함께 뒹굴며 모든 긴장을 내려놓는다. 그걸 보는 나도, 안도하며 이불속에 더 파묻힌다. 배달앱을 켜서 뭘 먹을지 고르는 것도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의식이다.


“오늘은 팬케이크 어때?”


“초콜릿케이크! 초코 듬뿍 있는 거!”


“너 어제도 초코 먹었잖아~”


“그건 초콜릿우유고, 오늘은 케이크야! 완전 달라!”


영호와 은찬이는 웃으며 실랑이했고, 결국 초코 브라우니가 도착했다. 식탁 위엔 조각 케이크와 따뜻한 커피.


작은 케이크 조각을 나눠먹으며 은찬이가 말했다.


“나는 일요일이 제일 좋아. 유치원도 안 가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있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엄마는 어릴 때 일요일에 뭐 했어?”


그 말에 나는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머릿속에 오래전 장면이 스쳐갔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오빠는 공부해야 했고, 엄마는 늘 바빴다. 나는 가족이 있는 집에 살면서도, 그들밖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요일 오전, 집 안에 있기 애매했던 나는 슬리퍼를 끌고 놀이터로 나갔다. 비가 온 뒤 그네는 햇빛에 데워져 따뜻했지만 모래는 아직도 눅눅했다. 일요일 아침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놀이터를 둥글게 감싼 나무 사이로, 멀리 주차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가족들은 돗자리, 과자, 장난감을 싣고 나들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얼른 타자~”


그 소리는 분명 멀리 있었지만, 내 귓가에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그네를 조용히 밀었다. 잠깐씩 떠오르는 허공 위에서 상상했다.


‘나도 저 차에 타면, 저 엄마는 나에게 선크림을 발라줄까?’


그러다 발끝이 다시 땅에 닿으면, 그 상상은 땅 위로 스르르 내려앉았다. 팬 케이크를 나르며 문득,


‘나는 지금 은찬이에게 어떤 일요일을 주고 있는 걸까’


생각이 스쳤다. 고개를 들어 거실을 바라보면, 소파에 엎드려 티브이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씩 올리는 영호. 방석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엄마, 이 곰돌이 엉덩이 좀 봐봐!”


하며 깔깔거리는 은찬이. 햇살은 식탁을 지나 거실까지 흘러들어와 그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아침. 내가 어릴 적 바라던 바로 그 장면 속에 지금 내가 있구나.’


불안은 늘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멀리 밀려난 듯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부스러기 묻은 손을 털고 말했다.


“은찬아, 우리 오늘은 마당에서 공놀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