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무더워진 여름 저녁, 아이와 목욕을 마치고 거실 테이블에 모였다. 남편과 은찬이는 팥빙수를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고, 숟가락으로 박자를 맞췄다. 얼음을 갈고, 팥을 올리고, 달달한 연유를 세 바퀴 돌려주고, 우유를 조금 붓고 젤리를 띄우면 우리 가족의 팥빙수가 완성된다. 그렇게 한 숟갈 퍼내어 먹으면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몽글몽글하고 톡톡 터지는 재미가 있는 팥까지. 입안에 단맛이 남기 시작하면, 마음 한켠이 슬며시 먹먹해진다. 은찬이는 손에 쥔 스푼으로 얼음을 푹푹 깨뜨리며 해맑게 웃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한다.
“엄마, 내가 먼저 먹어도 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같이 앉아 나눠 먹는 팥빙수. 그게 이렇게 따뜻한 기억이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그 해 여름도 참 더웠다. 당시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었고, 선풍기 두 대가 전부였다. 한 대는 엄마가 TV를 보는 거실에, 나머지 한 대는 수험생 오빠의 방에 있었다. 그래서 시원해지려면, 누군가의 옆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늘 해 질 무렵까지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험생인 오빠를 배려해 늦게 들어오길 바랐던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오빠는 늘 피곤해 있었고, 엄마는 오빠의 뒤에서 항상 분주했다.
“은호야, 오늘은 엄마 못 가. 오빠 학교에 상담이 있어서…”
참관수업 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오지 않으실 걸 알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아이들을 보러 온 수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만 없는 것 같아,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는 “너희 엄마 또 안 왔어?” 하며 놀리기도 했지만, 진짜로 또 오지 않은 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번은 친구 성아네 만화책 대여점에 놀러 갔다. 그때 성아네 엄마가 팥빙수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 성아 친구구나? 시원하게 팥빙수 먹으면서 놀아.”
빼곡히 꽂힌 만화책들 사이, 한켠에 있던 작은 주방에서 얼음 가는 소리가 퍼졌다. 성아가 좋아하는 빨강, 노랑, 초록 형형색색의 젤리를 가득 넣던 그 엄마의 뒷모습. 그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인데, 잠시 성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싱크대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올라섰다. 키가 닿지 않아 몇 번이나 흔들렸지만, 컵에 얼음을 넣고, 남은 단팥을 얹고, 우유를 대충 둘렀다. 재료의 비율은 엉망이었지만, 나를 위한 엄마 놀이가 꽤 행복했다. 혼자가 아니었지만, 혼자 같은 시간을 오래 겪으며 나는 가족의 단맛이 어떤 건지 모른 채 자랐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남편 이영호, 아들 은찬이와 함께 여름의 단맛을 나누고 있다. 씻고 나와 젖은 머리로 앉아, 은찬이가 건네준 팥빙수 한 입을 떠먹는다.
“엄마, 초록 젤리는 내가 넣었어. 얼음도 내가 조금 갈았어!”
숟가락으로 남은 팥을 삭삭 긁는 소리, 녹은 얼음과 팥, 젤리, 연유가 섞인 단물을 마시고 “캬” 하는 소리. 달고 맛있다며 웃는 아이. 저녁이어도 여전히 밝은 하늘. 혼자가 아닌 지금. 그 모든 것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나는 은찬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등은 따뜻했다.
“은찬아, 이건 그냥 빙수가 아니야. 엄마는 지금, 너랑 함께 처음으로 가족의 행복을 배우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