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편견에 맞설 수 있는 용기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존재론적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사회적 잣대에 맞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북>은 자신을 유심히 들여다 보게 만드는 거울 같다. 여자가 글을 쓰기 어려운 보수적인 시대, 그것도 야한 잡지를 쓴 '안나'가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 내면에 깨달음을 준다.
안나는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하지만 이는 야하다는 면에서 문제가 되며 안나는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애정하는 변호사 브라운은 그녀에게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하자고 제안한다. 그것밖에는 무죄를 받을 수 없다며. 하지만 그럼에도 안나는 말한다.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에게 그 소설이 미친 여자가 쓴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동시에 노래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고.
안나의 시대는 참으로 각박했다. 서른도 안 넘었는데 결혼 못했다고 문제가 있다고 하고, 여자가 글을 쓴다고 욕하고, 여자가 이혼을 요구할 땐 온갖 증거를 다 갖다 대야 하고. 그럼에도 주눅 하나 들지 않고 대응하는 안나를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저 시대에도 저렇게 당당한데 이 시대에 사는 나는 왜 쭈그리고 있나 싶고.
결국에는 신념의 문제인 것 같다. 자신에게 솔직하겠다는 신념.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생각이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안나의 이런 태도는 말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세상의 눈치를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어차피 나를 제일 사랑하는 건 나니까. 나를 지키겠다는 신념을 꼭 붙들고 살아야 험난한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