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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Oct 07. 2024

낙하산은 어디서나 존재했다.



20살 가장 먼저 배운 기술은 광택이었다. 50만 원 월급을 받으며 시작된 육체적 노동은 기대이상이었다. 체력에 자신 있는 나조차도 굉장히 힘들 정도니 말이다. 밥을 먹고 잠깐 쉬는 시간 빼곤 반복해서 차를 세척하고 융으로 닦은 뒤 코팅하는 보조업무를 3개월 동안 하였다. 하지만  그 뒤 엔 좀 더 체력적으로 어려운 기계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 한 대 작업할 때 광택 기계로 똑같은 구간을 4번씩은 돌아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불편한 자세와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하루에 2~3대씩 작업을 했으니 최소 기계작업은 8번에서 12번 정도 하는 것이라 체력소모가 굉장히 컸다. 오히려 이제는 차를 세척하고 융으로 닦는 시간이 숨을 돌리는 휴식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나 어려웠던 건 광택기계가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조절해서 끌고 다녀야 하는데 기계가 나를  끌고 다니고 있었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기계를 컨트롤하기엔 아직 경력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었다. 광택 기계도 초보인 나를 무시하는 것인지 "아직 너 따위에 통제당할 내가 아니다"라며 점점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고속 광택 기계(기술 숙련자)와 저속 광택 기계(초·중급자)가 있었는데 용도는 조금 달랐다. 무거운 고속 광택 기계는 광도를 내는 용도이며 조작이 더 어렵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저속 광택 기계는 마무리 용도의 기계로 좀 더 조작이 쉬운 편이었다. 난 아직 저속 광택 기계에도 끌려다니고 있는데 이제 어쩌란 말이냐.


낑낑거리며 작업을 하던 중 사장님께서 지나가시며 한마디를 하셨다.


"기계를 힘으로 이기려고 하면 안 되고. 기계가 가는 방향을 예측해서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해야지~"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고 손에 익히는데 까지는 2ㅡ3개월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기계컨트롤이 익숙해진 느낌은 마치 손잡이도 없는 무거운 짐을 오로지 힘으로 들고 가는 것과 짐을 수레에 실어 끌고 가는 것처럼 다르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기계 조작 능력이 향상될수록 내 힘을 적게 써서 작업하는 요령이 생겼다. 6개월이 지나서는 기계와 한 몸이 되는 것 같이 편하게 다루는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매일 2ㅡ3대씩 광택작업을 하며 조작하는데는 많이 수월해졌지만 혼나는 일은 아직도 많이 있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바로 실수로 연결이 되었는데 그 뒷수습을 할 때는 꼭 기술자 선배님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안 해도 될 일들을 자꾸 하게 만든다며 꿀밤을 잔뜩 선물해 주셨다. 그렇게 꿀밤과 함께 혹이 커지는 만큼 광택 기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기계도 손에 익고 실수하는 일도 줄어드는 시점이 되니 이젠 내가 뭐라도 좀 된 것 같았다. 나름 자세도 나오는 것 같고 내 위에 몇 년 안 된 기사님들도 나랑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오만방자해지고 있었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난 아직 배운 게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오랜 시간 혼자 기계를 다루다 보면 바보가 아닌 이상 숙달은 되는 것 이었고 누구나 흉내는 낼 수 있는데 말이다. 일반 사람이 보기엔 내가 그럴싸하게 기계를 다루는 것처럼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초급을 막 벗어난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술은 배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도 깨달을 수 없는 포인트가 있다.

광택기술역시 그렇다.


중 대표적인 몇가지이다.


조명을 보는 방법

기계의 바깥쪽 면의 원심력을 이용한 레벨링

열을 이용해 도장 면을 다듬는 방법

기계의 전체면을 이용한 마무리 공정 방법 등이다.


배우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고 알려줘도 그걸 당장 습득할 수 없다.


습득시간은 보조작업 3개월 +기계 숙달 6개월 +기술 포인트 숙달 최소 1년 이상소요 걸린다. 단기간 속성이더라도 2년 이하로는 광택 기술자가 되기 어렵다.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술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면 10년이 걸려도 그 수준으로는 절대 갈 수 없다. 맛집에서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나 기술의 특허 공법 같은 것과 비슷하다.


매일 하루 2ㅡ3대씩 광택 작업을 한 나도 1년이 넘어가서야 조명 보는 법을 어렵게 알게 되었다. 바로 위 사수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 온몸을 바쳐 충성하고 그분이 작업하는 방식을 어깨너머 보면서 관찰하고 흉내를 내가며 조금씩 습득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열심히 배우려 하는 내가 이뻐 보였는지 뭔가를 하다 막혀 끙끙거릴 때면 지나가시다 한 마디씩 던져주셨다.


"왜 엣지 날을 세우면 안 될까?"


"왜 기계자국이 많이 나올까?"


"어느 면이 가장 열을 안 받을까?


별것 아닌것 같지만 이런 조언 같으면서도 힌트 같은 한마디는 열심히 2~3개월은 일하고 기다려야 한 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답은 아니지만 생각할 수 있도록 주신 힌트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내 광택 기술은 조금씩 향상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분노가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년 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일이다. 부장님 (실제 동업 사장님) 조카라는 사람이 내 밑에 직원으로 들어왔다. 2살 많은 형이었는데 생김새와 짧은 머리 뚱뚱한 몸은 누가 봐도 부장님의 조카였다.


지금까지 열심히 막내 생활을 했기에 당연히 새로 온 막내 직원도 나만큼 열심히 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부장님 조카라고 온 형은  막내가 아니고 사장님 부장님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일하다 담배 피우러 가고 좀 하다가 주유소 쪽 사무실에 들어가 쉬고 있고 전화한답시고 자리를 비우는데, 내 머릿속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근무태도로 일 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특별히 정해진 쉬는 시간 같은 것도 없어 화장실 갈 때도 눈치 보고 다녔는데 말이다.


한 번은 참다 참다 회사 밖으로 막내직원을 데리고 나가 말했다.


"너무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나름 직장 상사처럼 권위 있게 말해보았지만 답변은 이렇게 돌아왔다.


"야 너 군대도 안 갔다 왔지? 아이 c 내가 너한테까지 이런 얘기 들어야 하냐. 그냥 좀 쉬엄쉬엄 하자 힘들다."


그 순간 반박할 수 있는 말들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화도 났지만, 형이라서 부장님 조카라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더 할 말 없지? 나 일하러 간다"


"네 뭐..."


그렇게 안 하니만 못한 대화로 흐지부지 상황은 종결되었고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차량을 작업하려고 준비하던 중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생겼다.


'아니 이건 뭐지???'


우리 회사에선 막내직원 수습기간이 있다. 나 역시도 그렇게 배웠다. 부수적인 업무인 (밑 작업) 세척하고 닦고 하는 단순업무 보조역할을 3개월은 해야 하는 룰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며칠 되지도 않은 초보자에게 부장님이 바짝 붙어 아주 친절하게 기계를 다루는 요령부터 내가 1년이 돼서야 어렵게 깨달은 조명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 00아 이렇게 기계를 너무 세우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조명을 이용해 작업을 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본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고생한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 이었다. 부장님은 나에게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에 더 분노했다.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고 눈물도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상상속으론 이미 기계를 던져버리고 회사를 뛰쳐 나가고 있었다.


'아 진짜 서럽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분명히 낙하산의 대우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감정들을 참고 묵묵히 일하는 것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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