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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Oct 03. 2024

무턱대고 일을 시작하다.

"공부는 무슨 공부냐. 때려치우자"

2001년 20살 노량진 재수학원 종합반 수업을 듣던 도중 가방을 챙겨서 나오게 되었다. 학원비 내기도 힘든데. 생각 없이 앉아 공부하는 척이나 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친구는 좋은 대학까진 아니지만 집에서 내주는 등록금과 용돈으로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땐 친구들과 놀거나 남는 시간 조금씩 아르바이트하는 게 전부였기에 집안 사정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철없이 놀기만 했던 어린아이였기에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친구들과 비교될 만한 게 별것 없었고 돈 쓸 일도 없는데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든지.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이 없이 살았다. 태어나 그렇게 20년을 살아온 것 같다. 집에서 해주는 밥 먹고 놀기만 하는 오늘이 즐거운데 무슨 걱정이 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그래도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우선 대학을 가자.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좀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기본이 안 되어있는데 어찌 2년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양심도 없는 것이다.


20살이 되니 알게 되었다. 나 아니 우리 집 형편은 좋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다른 친구들은 집안 형편은 넉넉하다는 것을…. 돈 걱정은 남의 이야기이다.라고 말은 안 했지만, 친구들의 행동에서 그렇게 느껴졌었다. 아니 그런 부유한 환경이 당연했기에 아마 몰랐던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 생각 없이 지냈던 것처럼 그 친구들은 대학 생활을 할 때도 별 걱정 근심 없이 다니며 놀고 차도 끌고 집에선 유학도 보내주는 그런 삶이 당연했다.


나의 현실은 집에 학원비 내달라는 것도 얘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두 번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하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확률은 아마 0.0000001 퍼센트 정도 될까 전혀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복권이 내 삶을 더 빨리 바꿔줄 수 있을 확률일 듯하다.


그래서 일단 먹고살 기술을 배워서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공부하기 싫은 이유를 찾았던 것인지 일자리 찾는다는 핑계로 아마 2~3달은 친구들과 먹고 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는 노는 친구들한테 까지 눈치가 보여 일자리 찾는 게 시급해졌다.


그때당시엔 일자리를 알아볼 방법이 많지 않았다. 하루는 벼룩시장 구인 구직을 보다가 딱 눈에 들어오는 구인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일을 배울 수 있는 회사는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자동차 외형 수리전문점 00매직에서 기술 배우면서 일할 사람을 구합니다.

-군필자 구함- 02- 400-0000 //


밑에 쓰여있던 군필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단 무조건 여기에서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전화를 걸고 면접을 보고 싶다고 하니 나이와 간단한 몇 가지를 묻고는 와보라고 하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일단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으로 찾아가서 면접을 보았다.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회사였다. 주유소 옆에 붙어있는 건물 1층에서는 여러 명의 사람이 차량에 붙어 무슨 작업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혹시 사무실은 어디인가요??"


"어떻게 오셨죠?"


"네 면접 보러 왔는데 사장님 좀 뵈려고 합니다."


"이 안쪽으로 들어가 밑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작업장을 통한 뒤 지하 쪽으로 내려가라는 안내를 받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내려가면서 보니 창문 사이로 사람들이 보였다. 나보다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 경리분과 사장님 같은 분 그리고 또 한 분 머리가 짧고 덩치가 크신 한 분(부장님)이 앉아 계셨다.


똑똑! 노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저기 그. 면접 보러 왔습니다."


"네 ~ 들어오세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리 직원이 대답했다.

머리가 짧은 부장님은 젊은 청년이 찾아와서 신기하셨는지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사장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그래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네 20살입니다."


"아니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왜 벌써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나요?"


"네 빨리 기술 배워서 돈 많이 벌고 자리 잡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우리 회사는 지금 기술을 배우면서 할 보조 직원을 채용하려고 합니다. 급여도 아주 적은데 괜찮겠어요? 젊은 사람들은 하기 힘들 것인데…."


"네…. 시켜만 주신다면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힘든 건 아르바이트 많이 해봐서 괜찮고 당연히 기술 배우는데 급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밥 먹고 차비만 충당되면 충분합니다."


사실 그때 뭘 배우는 지도 모르고 무슨 일을 내가 하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시작은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었다.


"근데 혹시 군대는 아직 안 다녀온 것 같은데 군필자를 뽑으려 하는 건 알고 있나요?"


"네 군대는 안 갈 같습니다. 집이 군인 집안이고 그런 게 있어서 아무튼 군대는 안 갈 거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거짓말을 한지도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뭐 지금 당장은 몇 달 안에 일어날 일은 아니니 일단 한번 써보지 뭐.. 이런 심정으로 대답하셨던 것 같다.


"그래요. 그러면 내일부터 바로 출근해 봐요."


예측해 본 건데 아마도 사장님 입장에선 일단 사람은 급하고 월급도 얼마 안 하니 이렇게 저렇게 보조로 일단 써도 나쁘지 않아 나를 채용해 주셨던 것 아닐지 생각해 본다. 뭐 나의 눈빛이나 각오 이런 게 맘에 들거나 하진 않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고 몇 달 근무하다 도망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당분간 일단 써보자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렇게 20년이라는 경력은 의도치 않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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