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니엘 Oct 21. 2024

새로운 파트에 도전하다.


결국 2004년 3월 입대를 하였다.


떠나기 전 사장님은 화도 많이 내셨지만, 너무 잘하고 있는데 경력이 단절되는 부분이 아쉽다고 하셨다. 이젠 한 지점을 맡아 기술자답게 일도 해내고 몸값도 많이 올라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급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이때 급여도 230만 원에 보너스까지 챙겨주셔서 매달 250만 원 이상 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었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군대에 가서도 경력을 좀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부사관과 장교들에게 불려 가 개인차량들만 손봐주는 정도였지 특별히 군대에서 경력을 살린 임무를 배정받진 못하고 전역을 하였다.


전역 후 바로 출근을 했는데 군대에 가기 3~4일 전까지도 일해서 그런지 2년이 아닌 2달 정도 쉬고 출근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한 회사는 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기존 사장님과 부장님의 동업 관계가 정리되어서 매장이 따로 분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장님은 성내동 지점에 계셨기에 나는 성내동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방이동 기술자로 계셨던 과장님이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성내동으로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한 지점에서 도색하는 기술자는 1명만 있으면 되는데 나와 포지션이 겹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내 밑에 있던 보조 직원 2명도 모두 퇴사를 한 상태인데 새로 온 막내 직원은 6살이나 많은 형이었다.


"네가 76년생이고 다니엘이 82년 개띠 내가 70이니까 위아래로 6살씩 차이가 나는구나, 서로 인사해."

과장님이 소개를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김다니엘입니다"


"아 그래요~ 저는 000입니다. 잘 부탁해요~"


"전에 군대 가기 전 근무하던 친구인데 전역하고 다시 출근한 거야. 근데 나랑은 좀 안 맞아 하하하." 과장님의 농담에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과장님과 나는 본점에서 광택 작업을 같이 오래 했었기에 이미 친한 사이였다. 12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일 끝나고 맥주도 자주 마실 정도로 친한 형 동생 같은 직장 선후배였었다.


과장님과 들어온 지 몇 달 안 된 막내 직원도 굉장히 가까워 보였다. 보아하니 막내 직원은 옆에 있는 사람을 굉장히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성향의 사람일 정도로 말이다. 벌써 과장님과는 서로 손발도 잘 맞아 작업이 척척 진행되었기에 내가 중간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회사 근무 현장 분위기는 점점 내가 굴러들어 온 돌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졌다. 사실 굴러온 돌이 맞았다. 사장님 입장도 난처한 상황이었다. 전역해서 온 나를 출근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기존에 있는 사람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같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과장님과 나의 일 스타일은 굉장히 틀렸다. 스승이 같지 않으니 일 스타일도 각자 스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 지점장님 스타일로 배웠기에 일을 과감하게 거침없이 해나가는 스타일이었고 (뒷수습할 자신이 있기에) 과장님은 최대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좀 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나도 지점장님에게 배우기 전엔 꼭 2~3번 반복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몇 가지 중간 공정 작업이 있었는데 필요하지 않은 상황엔 1~2번 정도에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더 작업 효율도 좋고 완성도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과장님과 의견이 부딪친 일이 생겼다.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작업한다면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 다방면으로 좋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 내가 작업하던 방법으로 진행을 해보았다.


"야! 그따위로 작업할 거면 저리 나가~"


"과장님 이렇게 작업해도 정말 괜찮아요. 저 믿어보세요."


아껴두었던 기술 팁을 꺼내 공유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고 싶어서 한 일인데 본전도 못 찾게 되어버린 것이다.


밑에 보조 직원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제대로 작업을 안 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거기에 자기보다 6살이나 어린 내가 과장님보다 12살이나 어린 내가 건방져 보였을 것이다.


끝까지 내가 작업을 한 뒤에 이상 없다는 걸 증명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게 되면 정말 서로 누가 더 잘하나 식의 싸움처럼 될 수 도 있어 과장님의 작업 방식에 맞춰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어디서 작업을 대충대충 하려고 해. 군대 가서 설렁설렁 일하는 거 배워온 거냐!."


과장님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더 얘기해 봤자 서로의 감정만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조 직원은 사수의 기술을 보고 배우며 일하는데 군대 갔다 온 어린놈이 와서 설쳐대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나 같아도 별로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이렇게 일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이 선 뒤에 사장님에게 얘기했다.


"저 잠시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요? 판금 기술을 좀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사장님은 이미 내가 곧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퇴사하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나도 사장님에게 특별히 불만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지금 회사에선 기술자 2명을 두고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정비공장에 있는 친구한테 연락 좀 해볼게."


며칠 뒤 사장님께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다.


"너 출근할 곳 찾았다. 조 부장 있는 공장으로 출근하게 얘기해놨어."

다시 꼬마로 들어가는 거니까 월급은 기대하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너 인마 가서 바짝 배워가지고 내가 부르면 그때 다시 와야 한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무조건 와야죠.!" 그렇게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정든 사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6살 많은 막내 직원과 조촐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무리를 하였다.


며칠 뒤 설레는 마음으로 정비공장에 첫 출근을 했다. 기술 배우는 꼬마로 돌아가 월급 80만 원을 받기로 하고 간 곳은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2급 공업사였다. 전에 근무했던 회사보다 규모가 3~4배 정도 크고 직원들도 10명 정도 되었다.


내가 사수로 모시게 된 공장장님은 판금 기술자이셨다. 2006년 당시 경력이 20년도 훨씬 넘는 배테랑에 깔끔하면서 터프한 상남자 스타일. 머리도 제품을 발라 빗어 넘긴 짧은 머리에 옷도 기술자처럼 안 보이는 항상 단정한 차림이었다.


현장엔 엔진이 내려가 있는 차량, 차체가 절단된 차량 등 처음 보는 광경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바쁘고 삭막한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 공장장님의 첫 오더가 떨어졌다.


"너일 좀 해봤지? 이 차량 앞에 범퍼랑 싹 뜯어봐"


"네!"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 자신 있었다. 범퍼 정도 탈착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한번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처음 오더를 받은 차량은 1992년식 뉴그랜저 차량이었다.


전에 직장에서 해봤던 차들은 보통 2000년식 전후의 신형 차들이었는데 구형 차량을 작업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 다를 게 있냐 생각하고 작업을 하는데 볼트가 안 풀리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20분도 안 걸릴 일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은 40분 아니 그 이상 계속 지나고 있었다. 거래처를 다녀오신 공장장님이 낑낑거리는 나를 보면서 한마디 하셨다.


"너 뭐 하냐? 아직도 하고 있냐?"


"네 이게 잘 안 풀리는 부분이 있네요….""이거 뭐 일 좀 할 줄 아는 놈이라더니. 형편없구만!"


"비켜 인마!" '파바박 위잉~윙'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이걸 못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원래 도색파트가 나의 업무였다고 핑계 대고 싶지는 않았다. 도색파트였어도 어지간한 범퍼는 다 탈부착 해봤기에,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었는데. 아무튼 그날은 온종일 혼났다.



그렇게 뉴 그랜저 차량은 내가 싫어하는 차량 리스트 중 한대가 되었고 공장장님에게 그렇게 매일 혼나면서 판금 업무를 배워나갔다.


공장장님은 어느덧 나를 조금씩 믿게 되시며 항상 거래처에 가시면서 오더를 몇 개 내시고 다녀올 때까지 싹 해놓으라고 하셨다.


"이거 뜯어놓고, 이차 다 판금 해놓고, 이거 출고할 수 있게 마무리 싹 해놔~"


잘해놓은 차들은 별 얘기 없으셨지만, 공장장님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호되게 혼나며 기술을 배워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 가는 내게 공장장님은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알려주시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다. 말투도 처음보단 많이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도색 위주의 업무가 아닌 판금과 교체 탈부착, 차체 절단 등의 업무를 하며 하나씩 배워나가는 일이 매일 가슴 설레며 즐거웠다. 기술이 향상된다는 것이 나날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볼트의 모양 개수부터 고정 핀 하나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하나하나 노트에 적고 외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공구를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작업하는 시간도 재면서 나름대로 분석과 통계까지 내며 기술을 향상했다. 판금 업무는 기술적으로 어렵기도 했지만, 정해진 원칙 안에서 분해와 조립을 하는 단순한 방식이 대부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공장의 막내이다 보니 이런저런 잡일은 물론 공장장님의 업무 관련된 보조 업무를 많이 도와드렸다. 그중 거래처에서 오더가 들어오면 공장장님을 따라가서 수리할 차 픽업을 같이 해오는 업무도 같이 하였다. (거래처는 차량 관련업을 하는 모든 업체다.. 3급 경정비, 세차장, 덴트샵, 신차사업소, 선팅 업체 등)


그렇게 거래처를 계속 다니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공장에서의 실세는 공장장님이었다. 실제 오더를 받고 견적을 내고 공장장님의 권한으로 전체적인 현장 업무가 돌아갔다. 전반적인 총관리자는 사장님이 아닌 공장장님이었다. 사장님은 그냥 사무실에 앉아계시거나 현장만 한번 쓱 보는 정도였다. 거기에 공장장님 눈치도 같이 보고 있었다.


공장장님을 믿고 거래처에서 차를 의뢰한다. 그렇게 입고된 차들로 매출이 발생하고 공장이 운영되고 있던 것이다. 공장장님의 능력은 판금 기술과 영업력, 견적 업무까지 조합된 것이었다. 기술만 있는 분들은 많이 계셨지만, 공장장님처럼 영업능력이 까지 있는 사람은 공장에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정비공장에서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은 기술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기술+견적 및 보험 업무+영업능력=공장 실세


견적 업무 보험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고객이나 보험사 직원과 대면해 상담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 영업적인 부분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차량을 출고하기 전 보았던 견적서들이 처음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관심을 두고 보니 조금씩 용어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기술적인 업무가 향상되면서 견적서의 내용은 좀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견적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사무실에 들어가 사장님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도 거래처 영업해 보고 싶습니다."

"견적이나 보험 업무도 배우고 싶습니다."


사장님과 옆에 있던 경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

"쟤 일하다 말고 왜 엉뚱한 소리냐."


"야 너 그거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그런 거 아니야"


"경력도 얼마 되지도 않은 애가 용기가 대단하다." 풉

여직원이 계속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얘기했다.


사장님은 잠깐 생각해 보시더니 조건을 얘기해 주셨다.


"영업은 뭐 네가 알아서 해봐라! 나한테 뭐 해달라고 하지 마라. 일절 지원은 못 해준다.

그리고 생각해 봐라! 견적 같은 걸 어떻게 뭘 알려주냐."


"아뇨 따로 견적 안 알려 주셔도 됩니다. 업무 끝나고 직원들 다 퇴근하면 수리한 차들 프로그램 훑어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보험사 업무는 제가 만약 오더를 가지고 온다면 그 건만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감사합니다. 사장님"


옆에서 듣고 있던 경리 직원은 사장님이 나가신 뒤엔 나에게 한마디 했다.


"야야 그게 쉬운 줄 아냐. 아서라"



그렇게 견적업무, 거래처 영업이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얼마 못 가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찾아올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이전 03화 어린 나이에 도색 기술자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