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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Oct 28. 2024

첫 오더를 따내다.



"바쁜데 방해하지 말고 좀 나가요!"


견적업무와 영업을 해보겠다는 당찬 포부와는 달리 아직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서 나온 답은 우선 업체를 방문해 얼굴도장 찍고 인사라도 해보자는 방법뿐이었다. 단순히 명함 한번 주는 게 이리 어려웠던 것인지, 쫓겨나기 바빴다. 어색하고 민망한 내 마음은 1도 배려해 주질 않는 것 같아 더 기분 나빴다. 몇 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렵게 용기 내서 들어갔는데 말이다.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웃는 얼굴로 어떻게 오셨냐고 묻곤 공업사에서 왔다고 하니 정색하며 나가라고 하다니. 아니 상식적으로 잠깐 인사하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인가. 내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판금 일엔 지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내어 근처 자동차 관련 업체들을 쫓아다녀 보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잡상인 취급만 받는 일은 이제 익숙해지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냥 인사라도 계속하자. 자주 가면 그래도 뭐 미운 정이라도 들겠지. 귀찮아서라도 한 번은 오더를 줄 수도 있겠지.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계속 가다 보니 이젠 내쫓진 않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박카스를 사 가보니 조금은 반응을 해주었다. 역시 뇌물이 필요한 것일까? 살짝 미소를 지려다가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게 보였다. 

아 뇌물을 좀 써야 하는구나..  하지만 박카스나 음료수, 간식을 사가도 이젠 당연한 듯이 그냥 두고 가라는 말만 하고 거래에 대한 얘기는 듣질 않는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 정말 이 정도 했으면 한 번은 거래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5번 6번 반복해서 가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쳐다도 보질 않는다. 뭐 손에 들고 온 거 없나 관심만 있고 나만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어슬렁거리다 나오고 도무지 전화는 한통 오질 않는다. 이젠 더 이상 뭘 사갈 돈도 없었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번뜩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성내동 지점에 있을 때 바로 옆 공업사 과장님이다. 이직하셔서 이쪽 일을 하진 않지만, 많은 거래처를 다니셨던 게 기억이 났다. 마음이 너무 급했는지 평소 잘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염치를 불고하고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어~~ 다니엘 어떻게 지내? 난 잘 지내지! 어쩐 일이야?"


"제가 00 공업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거래처 확보를 하려 합니다. 영업에 대해서 좀 여쭤 뵙고 싶은 게 있어

서요"


"쉽지 않은데. 왜 갑자기 영업하는 걸 생각했을까. 많이 어려운 건 알고 있지?? 네가 정말 잘해볼 자신이 있으면 내가 예전에 거래했던 사장님들 소개는 해줄 수 있어. 근데 그 뒤에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과장님은 통화 중에도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영업도 쉽지 않은데 오더를 받더라도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을 거라고... 막상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 얼마나 힘들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뭐 설마 사람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일단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며칠 뒤 과장님을 만났다. 예전 거래했던 곳을 같이 인사하려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며 하루 안에 다 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업체 사장님들 인사하고 나서 별거 아닌 것 같은 대화 내용도 작은 특이사항 하나까지 기억했다가 바로바로 다 적어놔야 해.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바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 업체이고 어떤 사장님인지 알아야 하니 기억이 바로 날 수 있게 저장하고."


과장님은 거래처들을 소개해 주려 다니는 차 안에서도 이미 많은 영업 노하우 팁을 알려주셨다. 명함 주러 들어가려는 업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면 그땐 절대 들어가지 말고 가능하면 이른 오전 시간도 피해야 하고 거래 중인 다른 업체가 있어 안 된다고 하면 명함만 두고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 나오고 등등 영업하려 업체를 방문할 때 꼭 지켜야 할 에티켓, 어느 시간대에 방문해야 하는지, 어떤 대화로 끌어 나가야 하는지 명함을 받고 명함에 그날 있었던 대화에 일부를 메모하라고 하는 팁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느 카센터 앞에 도착했다.

"아이고 송 과장 어쩐 일이야~" 얼른 들어와 커피 한잔해~


과장님과 업체에 같이 들어가니 내가 혼자 들어가서 인사할 때와는 180도 바뀐 응대였다.


"사장님 별일 없으시죠? 00 공장에서 지금 근무하고 있는 동생인데 소개 좀 해 드리려고요. 저 믿고 나중에 한 번 일 좀 맡겨봐 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다니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송 과장이 소개해 줬는데 믿고 일단 한번 맡겨 보죠~ 어린 친구라 좀 걱정이 되긴 하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렇게 과장님이 소개해 준 업체는 열 군데도 넘었다. 그중 어리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신 사장님은 2~3명 정도 있었다. 업체 사장님들의 성향을 간략하게 듣고 헤어지려는데 절대 잊지 말라고 하며 몇 가지 당부했다. 분명히 한두 번은 일 의뢰를 받을 수 있을 건데 그 한두 번이 가장 중요하다. 그때 특별한 문제없이 약속 시간 잘 맞혀서 딱 3번까지만 완벽하게 잘하면 그 뒤에 거래는 자연스럽게 계속 연결될 수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거래 시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작업에 사소한 실수라도 있으면 다시는 그 업체와 거래할 수 없으니 꼭 첫 번째 두 번째 거래는 모든 걸 걸고 완벽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두 번 세 번 잘해간다는 생각보다 한 번만 오더를 받는다면 헌 차를 새 차로 돌려줄 정도로 간절했다.


며칠 뒤 처음 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 00 모터스인데요. 작업 좀 하나 해줘 봐요~


"네!!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과장님과 인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첫 오더를 받다니, 믿기지 않았다. 송 과장님의 소개로 해준 한마디가 모든 걸 해결해 주다니.. 아무리 들이밀어도 명함 한번 받아주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안 받아주는 게 대부분 업체의 반응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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