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이 얘기해준 것처럼 거래처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더를 받더라도 약속 시간에 맞춰 수리를 완벽하게 해서 출고하는 일은 생각보다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26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기술자에겐 말이다.
현장 직원들에게 술 한잔 사면 내가 오더를 받은 일들을 하루 이틀은 좀 신경 써줬지만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돈도 다 떨어져 없는 돈에 담배라도 사다 줬지만, 효력은 반나절도 가질 못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오더가 들어와도 문제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파졌다.
판금 작업을 하던 중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 기술 좀 많이 늘었지? 다니엘!"
전에 근무했던 회사 사장님이었다.
내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서러움이 복받쳐 왔지만, 티 내지 않으려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너 나랑 약속한 거 기억하지? 이제 다시 좀 와줘야겠다."
" 이과장이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기로 했어."
전 회사를 나올 때 사장님과 이과장님의 성향도 틀리고 작은 트러블이 생겼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었다.
잘된 일인지 아닌지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판금과 견적 업무도 아직 더 배워야 하는데 퇴사할 때 사장님과 약속한 일이라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 공장에 잘 얘기한 뒤 연락 드리겠다고 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약속이었지만 이미 되돌릴순 없었다.
공장에서 퇴사한 후 다시 돌아간 기존 회사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예전 일할 땐 규모가 작다고 느껴보지 못했지만, 공장에서 근무하다 돌아가 본 현장은 상대적으로 작다는걸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 나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기술적인 능력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이제 도장만 작업할 줄 아는 게 아닌 판금작업도 중급 기술 이상 습득하였기에 거의 2명 몫을 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공장에 있었던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단기간 많은 기술 습득이 되어있었다.
첫 작업을 시작하였다. OO 매직 회사에 들어오는 차들은 대체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공장에서는 추돌사고가 나서 입고된 큰 손상 차량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 이직한 회사는 경미한 접촉으로 인한 손상이 대부분이었기에 혼자 업무 처리하는 게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과장님과 기술적인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지만 2급공업소에서 판금 기술 습득하고 온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범퍼 휀더 수리를 할 때 과장님이 4시간~5시간 정도 작업시간이 걸린다면 나는 3시간 내외로 작업이 가능했다. 하루를 평균적으로 계산해 보면 과장님은 2대 정도가 평균 작업대수이고 내가 작업한 뒤로는 3대가 평균 작업대수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기존 3급 업체에서 하던 간단한 작업뿐만 아니라 2급 공업사에서 두 파트에 나눠서 해야 할 일의 난이도 작업을 아직 20대인 젊은 친구가 척척 해낸 것이다.
처음 전역하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보조 형님은 다시 입사한 내가 작업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기존 과장님이 하던 공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시간이 단축되는 정도와 난도가 높은 일들을 척척 해내는 나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보조 형님과 나는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보다 6살 많은 형이지만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나도 가장 친한 친구같이 지내며 즐겁게 일을 해 나갔다.
물론 기술을 배우려 나에게 잘해준 것도 있다. 기술을 어렵게도 배워본 경험도 있고 좋은 스승님에게 좀 더 단기간에 배운 경험도 있었기에 나는 후임에게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싶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것도 나와 비슷해 더 잘 해주고 싶었다. 형님도 돈이 없어 옥탑 단칸방에서 살면서 기술을 배우고 있기에 같이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지내다 나는 다른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예전 공업사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사고 차(대 손상 차량) 전문 수리업체를 운영하시는 사장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었는지) 여기저기 연락처를 물어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사고 차 판금 기술 배우면서 회사에서 영업도 같이 해줄 수 있냐며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다. 아직 상급 기술자 실력이 아닌 중급 실력이니 와서 일을 배우고 영업도 해보라는 것이었다.
예전 공장에선 일을 가져와도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았지만, 사장님은 내가 일만 가져오면 가장 우선으로 출고하도록 맞춰줄 것이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현재는 사고 차만 하는 시스템이라 영업을 해 일반 수리차(일반적인 수리) 들이 입고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지금 직장에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내가 더 배울 수 있는 것들은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아직 나는 배워야 할 게 많았다.
그 전화를 받은 뒤 가슴속에서 이직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그 외에 다른 업무들도 아직 한참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걸 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급도 내 나이에 벌 수 있는 돈 이상으로 벌고 있고 조수를 두면서 일하고 있기에 현재로선 만족하고 있는 회사 생활이었지만 여기서 안주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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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시 이직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한 뒤 사장님에게 얘기했다. 지금 보조 직원을 5개월 안에 기술자로 만들어 회사 운영에 지장 없게 만들고 이직 하겠다고.
사장님은 그게 가능하냐고 몇 번을 되물으셨지만 나는 자신 있다고 했다. 또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하는 업무의 수준이 아닌 경미 사고에 대한 처리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다 잡혀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 뒤 내가 군대 가기 전 지점장님에게 도색을 배웠던 방법으로 보조 직원에게 모든 작업을 직접 하게끔 기회를 주었다. 잘 안되거나 문제 되는 뒤처리는 내가 모두 수정해 주면서 보조 직원은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약속한 5개월이 되기 전 들어오는 차량을 문제없게끔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에 나는 장안동에 있는 사고 차 전문 1급 공업사로 이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