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사업을 하지 않는 거니?"
같이 근무하던 도장 기술자 반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너 정도면 나가서 차려도 되겠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내 능력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사업이라는 생각은 1도 해본 적이 없다.
30살도 안 된 내가 무슨 사업을. 하루가 지나가기가 무섭게 매일 나를 볼 때마다 사업 이야기를 했다. 거래처도 많고 거기에 도장 판금도 잘하는데 뭐가 부족하냐며 계속 나를 부추겼다. 행여나 사장님이 들으실까. 이젠 좀 제발 그만하라며 했다.
막말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면 되는데 뭐가 무서운 거냐고 묻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문제지만 일거리도 많은데 왜 남 좋은 일 시키냐며 자기였으면 고민할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겁이 난다면 자기랑 같이 해보자며 동업을 제안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매일 거절하기에 바빴다. 정말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얘기하는데 이젠 화가 날 정도였다.
하루는 자기가 어디서 할지 자리까지 다 봐놨다고 하면서 저녁에 잠깐만 시간 좀 내보라고 하는 것 이었다. 진짜 좋은 자리도 있고 자기가 다 얘기해 놓았다고. 안 하더라도 가서 보기만 하자고, 제발 부탁이라고. 거절은 하였지만 그쪽 사장님과 이미 한번 만나기로 약속해서 하지 않더라도 가서 얼굴 뵙고 인사는 해야 한다며 반강제로 나를 끌고 갔다. 나도 모르는 내 안에 궁금증이 있었는지 결국 같이 가 보게 되었다.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출발해 송파구 오금동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이렇게 먼 곳에선 내 거래처들 오더를 받기엔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유지 할 수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가 보니 아파트 사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부서진 사고 차들이 골목 주차선에 몇 대 보이더니 공업사 간판이 보였다.
00카독크 무슨 상호가 저런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중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도장반장님은 숨겨놓은 보물을 소개해 주는 것처럼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내 눈엔 그냥 오래된 건물에 있는 노후화된 정비공업사로 보일 뿐이었다.
현재 근무하는 공장은 3~4층이기에 차를 엘리베이터에 넣고 올라가서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소비하지만 여긴 1층에 공기 환기도 잘되고 시간도 많이 아낄 수 있다고 했다. 하루에 1~2대는 더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도 없는 나를 계속 설득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갑자기 다짜고짜 공장 사장님을 만나자고 하는 것 이었다. 공장 사장님과 정식으로 약속을 정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졸지에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분위기를 보니 예전 그곳에서 오래 근무했었기에 그 공업사 사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것이었다.
도장 반장님은 나에겐 묻지도 않고 갑자기 공업사 사장님에게 동업하려고 한다며 지금 비어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공장 사장님은 내 이름을 묻고 어디서 근무했었는지 왜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고 싶은 지 몇 가지 물어보셨는데 나는 이름과 근무했던 곳은 송파 쪽에서 했다는 내용 빼곤 제대로 답하지도 못했다. 사업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안된다며 거절하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랑 같이 간 그 사람이 딱히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는지 어린 내가 미덥지 않아 보였던 것 같다. 나중에 한번 다시 생각해 보자는 답을 듣고 우린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은 아닌 게 맞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시작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00카독크에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 H 형님이 만났으면 하고 연락이 왔다. H 형님은 이쪽 송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나에게는 멘토와 다름이 아니었다.
20살 꼬마일때부터 아무 연고지도 없던 나에게 H형님은 큰 힘이 되었다. 한 회사에서 근무하지 않았지만 거래를 하고 있는 우리 회사에 올때면 얼어있는 나를 보곤 안쓰러웠는지 항상 재치있는 말과 특유의 넉살스러움으로 상막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뒤 내가 어딜가도 열심히 한 모습을 알고 그러셨는지 항상 좋게 봐주셨었다. 힘들때마다 한번씩 연락을 하면 내가 정신이 번쩍 들만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신 감사한 분이다.
다음날 나는 약속 장소로 찾아갔다. 그때 갔던 공업사 바로 옆 식당에서 H형님 그리고 00카독크 사장님 이렇게 셋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사장에게 나를 소개하며 꼬마 때부터 보아왔다. 자신을 믿고 자리를 좀 봐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너무나 당황했다. 사업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았고 인사만 드릴 생각에 왔는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그때 도장반장님과 다녀오고 난 다음날 동업은 없던 일로 하자며 자기는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꼬리를 내린 상태였었다. 나도 물론 마음이 없었기에 오히려 잘 되었구나 하고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웬걸. 사장님은 그러면 한번 믿어보겠다고 하시며 보증금을 낼 돈은 있냐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때 같이 온 사람과 동업을 하기로 해 절반씩 내려 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는 못 하겠다며 빠진 상황이라고 얘기를 드렸다.
그래서 돈이 모자란 상황이라 시작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H 형님이 부족한 돈은 자기가 먼저 낼 테니까 그렇게라도 좀 해달라며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나는 가만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러면 일단 부족한 돈으로 시작하고 보증금을 매년 조금씩 더 넣는 것으로 하자고 하며 임대를 나에게 준다고 하였다.
이렇게 말도 안되게 2008년 10월 송파구 2급 공업사에서 나의 첫 사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