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 일본행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 일본행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어떤 말 한마디가 마음 깊숙이 남아,
그 이후의 삶을 조용히 이끌어가는 순간 말이에요.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누가 했는지, 어떻게 들었는지는 희미하지만
지금까지도 믿고 있는 단 하나의 문장.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최소 세 번은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온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은 건 인생의 초입,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서툴렀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믿었습니다.
언젠가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지금 돌아보면,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의 큰 전환점을 지나왔습니다.
그 첫 번째는,
1990년대 말.
모두가 만류하던 ‘일본행’이었습니다.
나는 90년대 후반,
공대를 졸업한 아주 평범한 여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어요.
직장에 다니던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퇴사했고,
어머니의 삶은 곧 가족의 삶이었죠.
여성에게 ‘자기 인생’이란 말은
사치처럼 들리던 시절이었어요.
어머니는 세 아이를 키우며
남편의 성공과 자식의 성취를
인생의 성적표처럼 여겼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면서
가슴 어딘가가 늘 답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조용한 반항심이었는지도 몰라요.
막연하게,
나는 ‘독립적인 삶’을 꿈꾸고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죠.
입시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재수를 해야 했고,
그걸 감당할 여유는 내게 없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어요.
“여자도 기술이 있어야 밥 벌어먹고 살지.”
그 말에 따라 선택한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어요.
그 전공이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몰랐고,
대학생활 내내 방황했고,
공부보다는 나만의 이상한 관심사에 빠져 지냈죠.
졸업 즈음,
일본어 수업에서 낙제를 받을 뻔했던 내가
훗날 일본 땅에서 그 언어를 온몸으로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졸업 후, 한국에서 일본계 회사에 입사했지만
마음 한켠엔 늘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 있었어요.
그렇게 나는
마치 가출하듯,
‘요리학교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일본행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내 인생의 첫 ‘자발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한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어요.
나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꿈을 꾸세요. 그리고 계속 꾸세요.
꿈꾸는 방향으로 삶은 분명히 나아가게 됩니다.”
꿈의 힘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그건 단지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물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해피엔딩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앞으로 써 내려갈 내 이야기를 본다면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을
금세 알게 될 거예요.
20대의 나는 ‘존버’라는 말을 참 싫어했어요.
그저 막막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꿈을 꾸며 차분히 준비하고,
묵묵히 버텨라.
그러면 반드시 기회가 오고,
결국 이룰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해왔고,
당신도 분명히 해낼 수 있어요.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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