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시련이 나에게 남긴것들
지금 돌아보면, 참 겁이 없었어요.
일본에서 처음으로 취직한 곳은 90년대 후반,
IT 인력난 속에서 사람을 급히 뽑던 시스템 SI 업체였어요.
그게 무슨 회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시작했지요.
그땐 정말 무지했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참 아찔하기도 해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기술적인 흥미는 없었고
잘하는 건 그나마 영어 정도?
그것도 그냥 외워서 땄던 마소 자격증 하나가
결국 저를 살려준 셈이었어요.
그건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죠.
이번 글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정도의 ‘우연’은 찾아와야 기회가 열린다는 것,
하지만 그 우연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모해 보여도 우선 부딪혀 봐야 한다는 거예요.
이 문, 저 문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문 하나는 꼭 열리더라고요.
젊을 때 겪는 좌절은 분명 아프지만,
그게 인생을 포기할 만큼의 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 40대, 50대가 되어서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좇는 건
정말로 여러모로 어려워요.
이미 쌓아온 걸 버리기도 힘들고
심리적으로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땐 훨씬 더 버겁거든요.
저도 그걸 뼈저리게 경험했어요.
그래서 말할 수 있어요.
젊을 때 좌절은 괜찮다고.
첫 회사는 1년도 안 돼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가 금융권으로 이직을 한다는 얘길 듣고
저도 ‘나도 해볼까?’ 하고 무작정 따라 나섰죠.
운 좋게도 꽤 유명한 증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이었고,
그 사실도 사실은 월급을 보고 별 생각 없이 결정한 거였어요.
그리고 3개월 만에 보기 좋게 짤렸습니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비자’였어요.
일본의 취업비자는 1년, 1년, 그리고 3년, 5년…
이런 식으로 갱신되는데요,
저는 두 번째 1년 비자 중간에 실업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비자가 끝나기 전까지 다시 취직하지 않으면
그냥 강제 귀국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이직할 때 도움을 받았던 회사는
헤드헌팅과 계약직 파견을 함께하는 인재 소개 업체였는데요,
어떻게 진행되냐면,
계약직 자리가 생기면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하면 바로 출근하는 구조예요.
근무지는 금융회사지만
실제로는 그 인재 소개 회사의 직원 신분으로
파견 근무를 하는 거죠.
이런 시스템도 일본 와서 처음 알았어요.
첫 회사에서 짤리고 나서
금융권 비슷한 분야로 다시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진짜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어요.
첫 회사는 일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일하게 된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계 금융사였어요.
같은 나이 또래인데
3~4개 국어를 능숙히 하고,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해요.
심지어 출근 전엔 운동까지 마치고 오죠.
외모도 말 그대로 선남선녀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았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 시절은 제 인생에서 자존심이 가장 바닥을 쳤던 때였어요.
하지만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은 너무도 많다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
일을 할 땐 구조와 맥락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회사의 종류에 따라 전략도 달라야 한다
외국계 회사는 멋지지만, 현실도 냉정하다
두 번째 계약직은
처음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임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목표가 생겼어요.
“이번 비자 갱신까지만 버티자. 그다음엔 정직원이 되자.”
그 목표 하나 붙잡고
회사 일은 물론,
영어와 일본어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진짜 하루 14~15시간씩 일했어요.
그렇게 다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첫 실패는 아팠지만,
그 실패 덕분에 내 문제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났어요.
저 자신을 다시 세우게 해준
소중한 계기였어요.
다음 글에서는
일본 회사와 외국계 회사의 차이,
직장을 고를 때 알아두면 좋은 팁들,
그리고 커리어 초반에 꼭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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