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 Apr 18. 2023

죽은 강아지를 안고-박노해

시를 산문으로 바꿔 쓰기

 죽은 강아지를 안고 걸은 적이 있다. 부드럽고 따듯했던 내 강아지는 딱딱하고 차가워졌다. 크기는 여전히 작은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먹이고 입히고 함께 뛰고 잠든 만큼 무거웠다.

 언덕 위 볕 드는 구석 자리에 구덩이를 팠다. 내 작은 강아지를 폭 묻을 만큼 팠다. 강아지를 놓으려니 예상보다 깊어 보였다. 저세상 입구처럼 어둡고 깊어 보였다. 이별하는 길이 아득하니 멀었다.

 죽어간 것들은 무거웠다. 많이, 진심으로 사랑할수록 두고두고 무거워서 자꾸만 돌아보게 됐다.

 어린 참새와 동박새, 병아리, 개한테 물려 죽은 아기 염소, 절룩이다 쓰러진 늙은 백구, 끝내 눈도 못 뜨고 죽은 송아지.

 죽어간 것들은 눈가에 아른거렸지만 품고 가기에는 무거웠다. 죽은 내 어머니를 포함해 사랑한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버거웠다. 특히나 내 동지들. 어느 철길과 벼랑에서, 공단 변두리와 철책선 인근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의문사로 일축된 그들의 생은 너무도 무거워서 나는 안지도 업지도 못했다.

 그 생들을 이고 지고 나아가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무거워도 좀 더 나은 시대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 기억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묻어야 했는데.

 시대와 상황과 현실 때문에 퇴각해야 했다. 그날 제대로 묻어주지 못하고 혈혈단신으로 달려온 나는 이제 알겠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어두운 밤에 별을 발견할 때마다 그이들은 나와 함께 있었다. 내 안에서 가야 할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진정 사랑하다 죽은 만큼, 그 무게와 깊이만큼 생생히 살아있었다. 지금도 두고두고 날 울리며 나와 함께하고 있다.      


 '너의 하늘을 보아'시집 속 시를 산문으로 바꿔 썼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분입니다.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승리의 전설, 한 퇴역 경주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