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써 내려간 내면의 기록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 작곡가의 삶과 내면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바로 작곡가이자 날카로운 통찰의 평론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다. 슈만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세상과 소통한 예술가이자 펜을 들어 문학을 탐닉한 작가였다. 그의 영혼은 피아노와 문학이라는 두 개의 심장으로 뛰었고 두 심장은 때로 조화롭게, 또 때로는 격렬하게 충돌하며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빚어냈다. 그 영혼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선율에는, 슈만 자신의 내면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슈만의 내면적 깊이는 그의 문학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츠비카우의 출판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슈만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서재에 가득한 책들을 벗삼아 자랐다. 그는 괴테와 하이네, 바이런과 같은 당대 문인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문학과 철학에 걸쳐 풍부한 교양을 쌓았고, 이러한 지적 토양은 그가 절도 있는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기반이자 향후 음악 활동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슈만의 소양과 감수성은 음악으로도 줄기를 뻗어 나갔는데, 대학생 시절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전문 연주자가 되고자 당시 유명한 음악 교사인 프리드리히 비크 박사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비크의 혹독한 교수법은 슈만의 손가락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혔고,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대신 슈만이 시선을 돌린 곳은 작곡과 비평이었다. 평소 작문으로 다져진 글솜씨와 인문학적 소양은 자연히 그에게 문필가라는 길을 제시했고, 이에 1834년 슈만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라는 음악 전문지를 창간하며 본격적인 음악 평론가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슈만은 문학으로 기른 비평적 시각과 유려한 필치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었다. 그는 당시 보수적인 음악계의 풍조에 맞서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그들의 가능성을 조명했다.
특히 쇼팽의 걸출한 재능을 두고 "여러분, 모두 모자를 벗으십시오, 천재가 나타났습니다!"라 격찬했고, 무명의 신예 작곡가였던 브람스를 '미래의 거장'으로 소개하며 그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슈만은 낭만주의 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선도하는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편 슈만의 삶과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이다. 슈만이 비크의 집에 하숙하며 피아노를 배우던 때 그는 스승의 딸 클라라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 만남은 둘의 인생을 관통하는 운명의 시작이었다. 클라라를 향한 사랑은 곧 비크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사제지간의 절연으로 이어질 정도로 험난한 역경을 겪어야만 했다.
비크는 슈만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한 장래에 우려와 불신을 품고 있었으며, 때문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딸을 가난뱅이 작곡가에게 시집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 비크의 강경한 반대에도 둘의 연정은 흔들림 없이 더욱 굳건해져갔다. 그렇게 지리한 법정 소송을 거친 끝에 슈만과 클라라는 1840년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클라라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정서적 안정감은 슈만의 음악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해는 ‘가곡의 해(Liederjahr)’라 불릴 만큼 슈만의 삶과 예술이 뜨겁게 겹쳐진 시기였는데, 그는 1년 사이 140여 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 48)>과 <미르테의 꽃(Myrthen, Op. 25)>은 클라라를 향한 뜨거운 감정에서 비롯된 연가곡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가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시기 그의 내면을 감싼 언어와 음악의 결이 유난히 부드럽고 풍요로웠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클라라가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선 음악적 동료로서, 그리고 정신적 지주로서 일평생 슈만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예술적 전성기 한가운데에서도 슈만은 늘 형언할 수 없는 내면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다. 겉으로는 안정된 결혼 생활과 활발한 작곡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의 정신은 점점 더 불안과 우울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자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선율은 점차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감정의 무게를 머금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슈만의 음악은 대체로 고독한 내면의 풍경을 그린다. 열정적인 환희 뒤에는 음울한 우수가 서려 있고, 낭만적인 사랑 뒤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는 마치 낮과 밤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듯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아슬아슬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몽롱하고 우울한 멜로디로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 속에는 현실의 고통과 치열한 내면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슈만의 작품 속에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슈만 자신의 이중적인 내면을 투영한 가상의 인물,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플로레스탄의 외침과 조용하고 몽상적인 오이제비우스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심오한 정신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이는 그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 54)>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극적인 리듬으로 시작을 알리는 피아노 독주는 플로레스탄의 자아가, 그리고 이어지는 구슬프고 애틋한 오보에의 선율은 오이제비우스의 자아가 서려 있다. 두 개의 상반되는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의 심경과 슈만 자신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생동적으로 묘사한다.
슈만의 음악은 이처럼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의 감정을 담아냈다. 허나 그는 늘 격정적인 고뇌와 음침한 우울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성경의 어느 구절처럼 빛은 어둠이 짙을수록 강렬해지는 법이다. 그의 음악은 내면의 가장 깊은 암흑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평화로운 몽상을 포착해냈다. 바로 <트로이메라이(Träumerei, 꿈)>처럼 말이다.
그의 굴곡진 삶, 어쩌면 자유분방한 기질과 아내이자 같은 음악인이었던 클라라에게 느꼈던 열등감, 그리고 평생을 괴롭힌 우울증이라는 현실의 질곡 속에서도, '트로이메라이'는 마치 순수한 어린 시절의 꿈처럼 맑고 따뜻한 멜로디로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곡은 인간 슈만이 비극적인 내면 속에서도 얼마나 아름답고 보편적인 감성과 동심을 지녔는지 증명하며, 그의 음악적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웠는지를 보여준다.
슈만의 음악은 그렇게 회색지대의 예술로써 삶의 어두운 면과 빛나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종잡을 수 없는 불안과 갈등 속에서도 그는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었던 내면의 소리를 마치 사관(史官)처럼 음악으로 기록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설적인 평화와 공감을 발견한다. 비록 짧고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여전히 인간 존재의 가장 복잡한 감정과 진실을 건드리는, 살아있는 기록이다.
- 다비드동맹 무곡집 (Davidsbündlertänze, Op. 6)
- 크라이슬레리아나 (Kreisleriana, O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