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길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잘하는 편이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는 줄곧 어버버거리곤 한다. 누구든 본인의 전문 분야라면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낼 수 있겠지. 나는 원래부터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가 관심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입으로 옮기기가 어색한 것뿐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며 말해야 하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검수 과정을 거치니 말이 어버버 하게 되는 거다.
또는, 상대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말을 뱉기 전에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검토하고, 동시에 상대방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빨리 말을 꺼내야 하니 결국 어버버 하게 된다.
어버버, 어버버. 누군가 나에게 어버버 한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렵게 느끼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생각해봐야 할 순간이다. 나를 무서워하고 있을까? 혹은 까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나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긴장했는지도 모르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어버버 해버린 일을 밤에 돌아와 곱씹으며 ‘그땐 이렇게 말할 걸’ 하고 후회한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 적이 많다.
한 번은 친구와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쌓여 있던 분노를 터트릴 각오로 친구를 만났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화가 나서 흥분해 버렸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흥! 얼굴은 오래된 스마트폰처럼 뜨거워졌고, 머리는 핑핑 돌았으며 약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진정이 되자 그제야 ‘그때 이렇게 말할 걸’ 하고 후회하며, 가상의 친구 앞에서 다시 한번 싸움을 재연하기도 했다. 결국엔 잘 풀고 화해했지만, 그때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번엔 꼭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리!"
어버버 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지식을 쌓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구를 만나도 부담 없이 수려하게 말하고, 막힘 없이 대화를 이끌며, 상대가 한시도 지루해하지 않을 만담가가 되어야 할까?
흠... 이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부터 어버버 하는 사람들을 사랑해 주자.
어릴 적,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그런 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있는 힘껏 나를 변호했지만, 이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집에 돌아와 방에서 울음을 참아내며 어버버거리며 아무 말도 못 하던 내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으시고, 가만히 내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난 너를 믿어. 혹시 네가 실수했더라도, 난 네 편일 거야.”
그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해가 풀렸는지, 누군가 사과를 했는지도. 결과는 남지 않았고, 감정만 남아 있었다.
말을 어버버 하지 않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어버버해도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 법을 안다.
당신, 어버버해도 괜찮아. 나는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게. 우린 그런 사람이 되자. 조금 더 천천히, 부드럽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자. 아니, 말하지 못해도, 그저 굽은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자가 되어보는 건 어때?
어버버 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차가움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그들은 어버버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대들이 내 앞에서 굳이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대들이 침묵하더라도, 나는 오래도록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