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새로운 얼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누군가와 어울려 외출하며, 모임을 즐깁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듯, 나 역시 가끔은 나만을 위한 외출이 그리워집니다.
나는 평생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시끄러운 장소보다는 조용한 공간에 머무를 때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나가 공원 벤치나 정자에 앉습니다.
사방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긴 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 세계와 어딘가 비껴 선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 장면은 마치 수족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분명 이어지고 있지만, 나는 투명한 유리창 밖에서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이방인 같이 느껴집니다.
어릴 적 현장체험학습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갈 때면, 친구들은 하나같이 투덜거리곤 했습니다.
놀이공원처럼 재미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오히려 놀이공원이 싫었습니다.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밀리고 부딪히는 그 혼잡함이 내겐 멀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놀이공원이 풍기는 그 두근거리는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놀이공원에 가면, 나는 간식을 사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놀이공원에 가서 사람 구경만 했다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들 각자는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함께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바쁘게 하루를 계획하며 움직이지만,
그들 속에서 나는 계획 하나 없이 앉아, 천천히 그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내게만 느리게 흐르는 듯하고, 마치 혼자 다른 시간선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놀이공원보다 동물원을, 동물원보다 수족관을 더 좋아합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처음으로 수족관에 갔었습니다.
어두운 관람실 안, 푸른빛이 반짝이는 커다란 수조 속에서 가오리 한 마리가 춤추듯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수족관은 조용했습니다. 평일이었기에 관람객도 거의 없었고, 그 자리에 나와 가오리, 그리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만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앞에 조용히 서서,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간혹 사람들이 지나며 “우와, 가오리다!” 하고 외치곤 했지만, 그 감탄은 금세 사라지고, 그들은 다음 수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릴 적 나는,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모른 척할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지나간 후, 조용히 가오리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물론 대답은 없었지만, 분명 가오리도 나를 반가워했을 거라 믿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단순한 구경이 아닌, 하나의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인격체로서, 친구로서의 짧고 조용한 교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친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가오리에게 조심스럽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나는, 동물이나 물고기들과 말을 나눌 수 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말을 건네곤 합니다.
그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언젠가 전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말이 없습니다.
동물들은 울음소리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물고기들은 그저 말없이 조용히 헤엄칠 뿐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며 묵묵히 움직입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헤엄칠까?
떠나온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작은 수조 속 삶에 익숙해졌을까?
나는 문득, 그 조용한 유리 너머 생명들이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어릴 적, 내가 다시 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남긴 그 가오리가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절대 가벼이 약속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겐 순간의 인사였지만,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남는 특별한 약속일 수도 있으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받고, 결국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
누구였는지,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움만은 오래 남아 있습니다.
나는 가오리가 나를 잊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다만 따뜻했던 감정만이 남아, 한 조각의 잔잔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 조용했던 가오리처럼, 나도 누군가의 곁에서 말없이 헤엄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지.
누군가의 관심을 끌지 못하더라도, 의미 없어 보이는 존재처럼 느껴질지라도, 나는 그저 묵묵히 나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올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말없이, 흔들림 없이 헤엄치고 있을 테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람은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말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기다릴 것입니다.
안녕.
잘 가.
다음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