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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by 장혁수

나는 수박을 싫어합니다.
어릴 적 수박은 먹을 때마다 옷을 쉽게 더럽히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잘라주시던 수박은 너무 커서 제 입에 다 들어가기엔 벅찼기 때문입니다.
씨도 너무 많고 수박은 어린 제겐 여간 먹기 불편했습니다.

직접 찾아 먹으려 하지 않아도 여름만 되면 여기저기서 수박이 저를 찾아옵니다.

오늘도 저는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여름철 식판에는 수박이 한 칸을 차지합니다. 젓가락 한 짝으로 푹 찍어서 바라보고 있으면, 무거운 수박이 쇠젓가락을 타고 손등에 축 떨어져 버립니다.

난 왜 수박이 싫어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수박만 보면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녀는 수박을 참 좋아했거든요. 한겨울에도 수박을 찾던 그녀는 여름철만 되면 밥도 거르고 수박만 먹곤 했습니다.
그게 그리 맛있었는지, 그녀는 카페에 가면 항상 수박주스를 마시곤 했었습니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애초에 수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좋아했기에, 그녀가 좋아하던 수박도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그녀를 볼 수 없지만, 여름만 되면 여기저기 나타나는 수박 덕분에 그녀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그녀를 좋아했기에 수박도 좋아했었고, 이제는 그녀를 미워해야 하기에 수박도 미워할 이유를 찾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괜스레 싫어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쇠젓가락에 꽂힌 채 손등 위로 축축하게 울고 있는 수박이 왠지 안쓰러워집니다.
그래서 이제 그냥 수박을 용서해 줄까 합니다.

끝나가는 점심시간, 사람들이 다들 일터로 돌아갑니다.
식당 아주머니가 잘라주신 수박은 너무 커다래서 먹기 조금 벅찹니다.
그렇지만 이젠 어른이 된 저는 한입에 수박을 입에 넣었습니다.
휴지로 축축해진 손을 닦고 자리를 정돈했습니다.

오랜만에 먹은 수박은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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