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네일아트를 하다
버건디 색상이었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옷을 잘 차려입고 강남으로 데이트를 하러 갔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나더러 앉으라고 한다.
별로 앉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호의를 무시하기 싫어 의자에 앉았다.
“와! 의자가 따뜻하네요!??”
아주머니는 빙긋 웃으시고 바로 버스를 타고 떠나셨다.
묘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낯선 이의 친절,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않아 몰랐던 신문물의 발견.
지금 생각해도 그 아주머니는 매우 신기하다.
남자친구와 손잡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우릴 보고 예쁘다는 듯 바라보셨고
(지금의 나도 젊은 친구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말없이 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나를 알고 있는 듯한..
지금도 생각하니 왜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겠다.
마치 미래의 나를 만난 느낌이랄까.
벌써 4-5년은 지난 것 같다.
간이 약한 나는 늘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꼭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 네일아트를 하기 위해서는 꼭 예약을 해야 하고 늦어지거나 취소하면 예약금을 날려야 한다.
갈라지거나 깨지면 나 혼자 뜯지도 못하고
또 예약을 하고 샵에 가서 제거를 해야 한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 귀찮게 느껴졌었다.
최근 들어 소화도 잘 안되면 체하고 몸살이 나서 내 건강상태에 불만이 많아졌다.
예전에 사다 놓기만 하고 먹지 않던 간 영양제를 일주일간 복욕해보니
피로도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러고 나니 귀찮게 여겨졌던 일들이 하고 싶어졌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졌고
음, 오늘이라면 예약을 하더라도 마음 바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집 앞의 네일숍을 찾아보니 대여섯 군데나 나왔지만
선택은 제일 가까운 곳이다.
출퇴근하면서 매일 보기 때문에 내적 친밀감도 있었다.
퇴근 후 시간으로 예약을 했고
시간 맞춰 퇴근을 했고
그날따라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걸어야 했지만 전혀 불만스럽지 않았다.
오, 우산 쓰고 걸어본 게 얼마 만이야.
흙냄새 너무 좋다.
마음건강은 몸건강에서 오는 것이 확실하다.
원장님은 내 손톱을 보시더니
“굉장히 오랜만에 하시나 봐요?”
“네 아주아주 오랜만이에요, 손질할 게 많죠?”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손톱이 굉장히 건강해서요.”
이러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입장차이에 따라 상대방의 말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을 목격하면 매우 재미있다.
무슨 일이 있기에 갑자기 네일아트를 하시냐는 질문에
나의 간 건강부터 얘기하기는 너무 길어서
그냥 스트레스받아서 갑자기 오게 됐다고 대답했다.
보통 따뜻한 계열의 색을 선택했었지만 오늘은 파란 바닷빛깔을 선택하자고 마음먹고 왔다.
신중하게 파스텔 블루를 선택하고 구경을 하다 보니
리본장식물에 눈이 갔다.
부담스럽게 느껴져 장식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왠지 도전하고 싶어졌다.
선택한 색상으로 작업이 완료되고 보니
하얗지가 못하고 칙칙한 내 손에 푸른색 손톱이 생각보다 더 어색했다.
“ㅎ… 멍든 것 같고 생각보다 별로네요.”
말이 그냥 나와버려 아차 싶었다.
“왜요 이제 많이들 하는 색이시고 저는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요”
원장님도 당황하지 않으시고 자기 의견을 내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가요? 좀 어색해서 그런가 봐요. 죄송해요, 김 빠지는 소리 해서”
리본장식도 잘 골라주시고 처음이라고 하니 많이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시며 작업해 주셨다.
“리본장식은 하길 잘했어요. 너무 맘에 들어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더더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신경 쓰다 보니 대화 자체가 피로해졌다고나 할까?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만들고. 손님 상대를 할 뿐인데
마음은 무슨 거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오히려 나도 괴롭히게 되고 간단한 대화도 딱딱하고 부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명상과 더불어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고, 스스로 상처를 주고 고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상황에 맞는 예의를 지키고,
가능하면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고,
내 그릇만큼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 의도를 잘못받들이면 어떡하지?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받으면 어떡하지?
남이 나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지?
등등의 과한 생각들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대화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타인의 호의는 웬만하면 고맙게 받으려고 하지만
조금 불편한 감정이 들면 거절하기도 한다.
불편한 상태로 호의를 받으면 나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오해를 해도
그건 그들의 몫이다라고 생각하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내가 초민감자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태도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상황이 많이 있었기에
나 또한 상대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해 왔다.
최종목표는
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고
상대가 무례하게 굴더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별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짜증이나 화를 낼 때 진심으로 심각하게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순간이,
그 상황이 그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