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여행에서 낭만을 찾다
올여름을 기점으로 나의 최애 국내여행지는 ‘제주도’로 선정하게 되었다. 학교 교류수업을 명목으로 3주간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을 주었다. 예전에 2박 3일, 3박 4일 여행으로 짧게 왔을 때는 느끼지 못한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제일 덥고 습한 7월에 제주도에서 뚜벅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긴 배차간격 덕에 버스 정류장에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류장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낭만의 일부 아닐까? 학생 때가 아니라면 경험하지 못할 ‘가성비 여행’을 통해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제주대 기숙사에서 웬만한 관광지 또는 바닷가까지 나가려면 버스로 1시간 반에서 2시간가량 걸린다. 판포포구로 가던 제주도에서의 첫날, 시내에서 갈아탄 두 번째 버스를 78 정류장 가까이 타기도 했다. 첫날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1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해야 할 때에는 피로를 풀기 위해 낮잠을 자거나 창밖을 내다보며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았던 서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느끼며 뚜벅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더 나이 들어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낭만일 것이다.
제주도가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제주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탁 트인 해변과 붉게 물든 노을, 이 두 가지 만으로도 내가 제주도를 좋아할 이유는 충분했다. 서울에서처럼 똑같이 카페에 앉아 할 일을 해도 오션뷰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하는 것은 훨씬 더 행복했다. 바다, 노을, 여유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최적의 환경 아닐까.
지금까지는 제주도 여행을 하려면 정말 큰 마음먹고 비행기표부터 예매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주와 서울을 자주 오가며 비행기를 타다 보니 저렴한 새벽 비행기를 예약해 나 혼자 편히 누울 수 있는 숙소만 구한다면 전혀 어려울 것이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 서울에서의 일상에 지쳐 조용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진다면 첫 후보지로 제주도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제주도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질문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딱 한 가지는 없었다. 제주도가 좋은 단 하나의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나는 그냥 제주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