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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난 여행 #2. 전주

by 윤슬

언제나 그렇듯 5월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각종 과제와 행사, 그리고 미뤄둔 약속들에 치이다 보면 지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올해 5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월이 절반 정도 지난 시점, 슬슬 기말고사를 생각할 때가 되니 이번 학기 마지막 여유를 즐기고 싶어졌다. 이때가 아니면 더 이상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조금은 충동적이지만 혼자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평소였으면 무조건 바닷가로 갔을 테지만, 얼마 전에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고 7월에는 또 제주도 3주 살이가 예정되어 있어 이번에는 바다가 없는 곳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볼거리가 어느 정도 있으면서도 뚜벅이 여행이 가능한 곳을 찾다 보니 전주로 떠나게 되었다.



내 마지막 전주 여행은 아마 초등학교 시절 가족여행이지 않았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건 풍년제과 초코파이와 만두 정도? 거의 처음 가보는 사람의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짰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여유'로 잡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몇 가지 결심을 했다.

1. 시간에 쫓기지 않기

2. 여행에 가 있는 시간만큼은 과제와 공부 생각하지 않기

3. 행복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




이번 여행은 용산역에서 시작되었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는 건 거의 4년 만이려나.


숙소에 가방을 내려두고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베테랑 칼국수'. 예전이었으면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이젠 칼국수쯤은 얼마든지 혼자 먹을 수 있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난 뒤, 소화도 시킬 겸 경기 전에 갔다. 반팔 하나 입으면 딱 시원한 날씨였다. 3-4월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해가 살짝 가려진 흐린 날씨도 좋은 것 같다. 특히나 여행을 다닐 땐 햇빛이 너무 강렬하지 않은 이 정도 날씨가 딱 좋다.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네컷 사진을 찍으러 갔다. 찾아보니 전주 프레임이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 그나마 전주 느낌 나는 '한옥 네컷'으로 갔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을 위해 3천원에 1장만 뽑을 수 있는 옵션도 있어서 이걸로 골랐다. 혼자 네컷사진을 찍을 일이 별로 없다 보니 들어가는 순간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파란색 옷을 입고 핑크색 배경을 고르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그치만 괜찮아 다음에 더 잘 찍으면 되니까! 잘 나오진 않았어도 이날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후 한옥마을 여기저기를 산책하며 돌아다니다 카페에 들어갔다. 평소였으면 카페에서 과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했겠지만 여행 전 세운 나만의 철칙을 따라 공부와 관련된 건 철저히 배제했다. 글 쓰기, 방학 계획 세우기, 진로 고민하기, 동아리 일 하기, 책 읽기 이 정도만 허용되었다. 아무도 없는 2층 공간의 고요함이 좋았다.


인생은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원래는 카페에서 일몰 보러 오목교로 바로 갈 계획이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슬슬 배가 고파져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저녁으로 먹을 육전을 포장해서 우선 숙소에 들어갔다. 2인분짜리 육전을 반 이상 해치우고 노을을 보러 나왔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날 날씨는 그렇게 맑지 않았다. 해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어서 노을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치만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음료와 과자를 하나씩 사 왔다. 아까 남겨둔 육전을 마저 먹고 미리 잘 준비를 마친 다음, 테이블 앞에 앉았다. 낮에 산 엽서에 일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주 여행부터 밀고 있는 나만의 여행 기록 방식은 바로 '엽서 뒷면에 일기 쓰기'이다. 한 장에 천 원 정도 하는 엽서의 앞면에는 내가 간 곳의 풍경이 담겨있다. 이제 그 뒤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해 두면 완벽하지 않은가..!!


일기를 쓰고 나서는 노트북을 펼쳐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방학 때 뭘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낼지 알아보기도 하고, 요즘 빠진 유튜브 채널의 영상들을 보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 둘째 날 아침은 산책과 함께 시작되었다. 헤드셋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걷는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내가 고요함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숙소 체크아웃 후에는 전주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전동성당을 지나 풍년제과로 갔다. 아무래도 전주까지 왔으니 초코파이를 사지 않고 갈 수는 없겠지? 초코파이 10개짜리 상자가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전주여행의 마지막은 다가여행자도서관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지만 내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쪽지와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이번 여행을 하며 일과 삶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세웠던 규칙인 '과제와 시험공부 생각은 절대 하지 않기' 덕분에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더 열심히 나아갈 추진력을 얻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법 또한 배웠다. 예전에는 여행을 갔을 때 날씨가 흐리면 불평하고 아쉬워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흐리면 흐린 대로, 현재를 즐기고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고요함을 좋아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혼자만의 산책시간, 조용했던 도서관, 그리고 혼자 앉아있던 카페까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고요함이 참 좋다.


첫 혼여행보다는 훨씬 더 익숙하고 편안했던 나의 두 번째 혼여행! 이때의 기억으로 남은 1학기를 버티게 된 것 같다. 이번 여행도 원 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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