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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8. 2023

엘리트의 똥고집

기싸움

‘가지 마세요! 아직 안 돼요! 날 두고 가지 마세요!’

 나는 선생님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속마음도 모르고 매정하게 신발을 신었다.

 “그럼 세 달 뒤에 오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 주시고요.”

 벌어진 문틈으로 봄바람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도담이한테 속고 계세요!!’

 말하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결국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선생님을 보내버렸다. 이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선생님은 사후관리 때까지 오시지 않는다. 합숙 후 이어진 2주간의 현장 교육도 종료. 이로써 안내견파트너 교육은 완전히 끝난 것이다. 현장 교육은 하루 5시간 정도로 이전만큼 타이트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고난도 코스였다. 도담이와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지하철을 타는 것 등 이동에 필요한 기본 기술도 익혔지만 역에서 집까지 찾아오거나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곳까지 혼자서 오가는 연습을 주로 했다. 안내견학교가 있는 한적한 경기도와 달리 서울 시내는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 대서 그 속을 걸어 다니는 건 상상 이상의 공포였고 특히 계단에서는 완전히 얼어붙어 관절 없는 로봇처럼 삐걱삐걱 댔다. 그래도 어찌저찌 하루하루를 넘겼고 조금은 도담이와 걷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듯했다. 그는 안내견학교 선생님도 인정한 엘리트였으므로 계단 앞이나 인도 연석이 시작하는 곳에서 착착 멈춰서 주었고 나는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다. 도담이는 분명 훌륭한 안내견이었다. 선생님 앞에서는...

 “가자. 응?”

 - 하우우~

 도담이가 하품을 했다.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지 길 한가운데에서 꼼짝 않고 버틴 게 벌써 10분이다. 역까지는 100m도 안 되는데 그것도 못 간다. 그렇다. 그는 선생님이 없으면 내 말을 안 듣는다!

 “잘 지내시죠?”

 “선생님 가시고 말을 안 들어요.”

 현장훈련이 끝나고 한 달 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달이 지나도록 도담이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목적지에 가는 데 평소보다 3배는 걸렸고 그가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놀이터로 날 이끌었다. 놀이터는 맞은편에 잔디밭도 있어서 강아지가 뛰어놀기에 딱인 그런 장소였다. 나는 답답한 맘에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안 듣는데요?”

 “그냥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그래요? 그럼 한번 보죠.”

 선생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 집에 들르지 않으시고 몰래 뒤에서 우리를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도담이와 나는 집을 나섰다. 그가 훌륭히 아파트 현관 계단을 찾아 멈춰 섰다. 나는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여기까지는 원래 문제가 없었다. 이 다음이 문제다.

 “왼쪽으로.”

 역시나 그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놀이터는 오른쪽이다.

 ‘드디어 너의 모범생 가면이 벗겨지는구나!’

 난 그의 숨겨진 모습이 탄로 날 생각에 기뻤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허공을 향해 킁킁대더니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자. 왼쪽으로.”

 그가 곧바로 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니 이럴 수가.

 “오른쪽. 계단 찾아.”

 내 말을 척척 들었다. 선생님 없이 이런 적이 없는데. 학교 나온 강아지는 역시 머리 회전이 다른가. 아무래도 도담이는 선생님이 있는 걸 눈치챈 거 같았다.

 “문제없어 보이는데요?”

 “아닌데 그동안 잘 안 갔어요...”

 “좀 더 지켜봐요.”

 현장훈련 후, 나는 거의 매일 도담이와 연습을 하러 나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제일 많이 간 곳은 2분 거리 아파트 상가 정도였다. 그는 계속 나를 놀이터 쪽으로 인도하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오니까 또 안 그런 척한다. 그는 완전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결국 그날 도담이의 반항을 증명하지 못하고 선생님을 보내야 했다.

 “누나 출근해야 돼. 얼른 가자.”

 리드줄이 오른쪽으로 당겨졌다. 또 놀이터가 있는 방향이다. 도담이는 놀이터에 가자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흰지팡이로 갔으면 진작 지하철을 탔을 텐데. 27kg이나 되는 녀석을 업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그럴 거면 봇짐이지 애초에 안내견이 아니지 않는가.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역시나 나에게 관심이 없다.

 “저.. 혹시 뭐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하하하...”

 안내견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너 때문에 나만 창피해졌잖아.”

 그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네 발로 땅을 움켜쥔 채로 꼼짝 않았다. 계속 놀이터가 있는 방향만 보고 있다.

 “맛있는 거 줄까?”

 꼬리를 흔들며 내 손을 킁킁댔다. 드디어 반응이 있다. 한 걸음에 한 알, 다섯 걸음에 한 알, 조금씩 걸음 수를 늘려가면서 역으로 향했다. 역까지만 가면 그래도 잘 가는데 이상하게 아파트를 벗어나는 게 힘들었다. 선생님이 다시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믿어서 그런가.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도담이를 먹이로 유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외출을 거듭할수록 우리의 행동반경은 넓어졌지만 혹시 또 그가 변덕을 부릴까 싶은 맘에 늘 그를 위한 미끼를 들고 다녀야 했다.

 “어때요? 좀 지낼만하세요?”

 선생님이 가시고 1주일이 지났을 무렵 전화가 왔다.

 “네. 아직 멈춰서 안 갈 때가 있긴 한데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네요. 다른 문제는 없어요?”

 “네... 아직까진...”

 거짓말을 했다. 말해봤자 도담이는 또 안 그런 척할 게 뻔했다. 그의 길 고집을 어느 정도 꺾자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실내 배변을 거부하는 것. 도담이가 작은 것은 하지만 큰 것은 나갈 때까지 안 하고 참기 시작했다. 안내견들은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먹는 양도 정확하게 몇 그램인지 정해져 있고 식사 시간, 배변 시간도 일정하게 루틴이 잡혀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의 생리현상에 맞춰 스케줄을 조절하고 지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집을 부리거나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안내견 스스로가 화장실 루틴을 어겨버리곤 한다. 마치 한 방 먹이려는 것처럼...

 경복궁역 출구를 나와 그가 저질렀다. 원래는 매너벨트로 해서 전혀 주울 일은 없지만 이렇게 골탕 먹이면 방법이 없다. 나는 길 한복판에 흩뿌려진 그것을 찾아 땅을 더듬었다. 물론 손에 비닐봉지는 잘 씌우고서다.

 “눈도 안 보이는데 사서 고생하네.”

 지나가던 할머니가 쯧쯧 혀를 찼다. 맞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분명 사서 고생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데려다주고, 요리도 만들어 주고 하는 편한 삶도 있다. 하지만 몰라서 하는 말이다. 모든 걸 스스로 하다가 갑자기 도움만 받게 되는 처지에 놓이면 자존감이 얼마나 붕괴되는지. 특히나 나같이 온갖 도도한 척하던 아가씨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가고 싶을 때 자유로이 나가고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생긴다는 기쁨을 그들이 알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졌다는 자기효능감의 추락 속에서 만난 희열! 내게 안내견이란 그런 존재였다. 할머니가 보든 말든 난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랄랄라~  나는~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 두운~  과자를 몰래 주워가느은 여자~ 랄랄라~’

 ‘고생이 많구만.’

 쾌변에 즐거워진 도담이가 꼬리로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완전히 병주고 약주고. 어쩌겠나 내 새끼인걸. 지나가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굴러다니는 위치만 안내받고서 스스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나는야 훌륭히 자립하안~  시각장애인 안내견 파트너어~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이기도 하지요오~ 이 정도는 거뜬히 해내야 도담맘이지요오~’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에 찍히는 ‘ㅠㅠ’. 속상하거나 힘든 게 아니라 창피했다. 경복궁역은 외국인도 한국인도 너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담이가 실내(역사 안 등)에서는 절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걸 밟지 않는다는 것. 저질러놓고 눈치 보며 내 뒤에 늘 숨어 있는다. 이게 또 귀여워서 어쩔 수가 없다.

 돌이켜 보면 정말 화려한 기싸움이었다.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기싸움을 이런 식으로 겪을 줄이야. 처음 안내견을 만났을 때 한 달 정도 약간의 기싸움을 한다고 다른 안내견 파트너들이 말한 적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벌일지는 애들마다 다르다지만 상당히 골치 아픈 기간이라고. 확실한 건 도담이는 보통은 아니었다. 무려 3개월이나 나와 길 싸움과 배변 실랑이를 벌였고 나 또한 학습하는 동물이기에 도담이의 엉거주춤한 발걸음만 봐도 그가 원하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아이 키우는 것과 너무 닮아있어서 눈치도 보고 어르고 달래고, 혼낼 때는 혼내고. 때로는 타협하고. 그렇게 호흡을 맞추는 것이었다.

 ‘너가 정말 날 책임질 수 있겠어? 내 모든 걸 사랑해 줄 수 있겠어?’

 도담이가 벌인 파트너 테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자신의 모든 생활을 맡겨야 하는 입장이니 그 정도는 해보고 싶었을지도. 분명한 건 우리는 그 시기를 잘 넘어갔고 지금은 집 안에서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만큼 나를 따른다는 것이다. 다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선생님, 산책을 저랑만 나가요.”

 “도담이가 누나를 엄청 좋아하나 보네요. 잘 됐지 뭐.”

 도담이는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산책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하기 전에 감기몸살에 가족들에게 산책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대문조차 나서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열이 나더라도, 감기에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365일 그와 산책을 나가고 있다.

 “나는야 훌륭히 자립하안~  시각장애인 안내견 파트너어~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이기도 하지요오~ 이 정도는 거뜬히 해내야 도담맘이지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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