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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6. 2023

짝사랑의 시작

안내견 입양기 2: 그를 만나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얌전히 있을 수 없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온다. 나의 안내견을 만나는 것이다! 합숙 시작 전 걸었던 세 마리 중 누가 내 가족이 되는 걸까? 역시 2번이었으면 좋겠다. 듬직하고 파워풀한 워킹이 매력적인 그 친구 말이다.

 “이번에 안내견 세 마리가 졸업했어요. 최종 결정 전에 한 마리씩 걸어보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입소 몇주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안내견학교였다. 나는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므로 곧바로 그 제안에 수락했다.

 “자, 그럼 한 마리씩 걸어볼게요.”

 “이 친구 이름은 뭐예요?”

 리트리버치고는 아담한 녀석이 학학 대며 나를 향해 펄쩍거렸다.

 “하하, 그건 비밀이에요. 그냥 걷는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서 누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나는 말대꾸 없이 선생님이 건네준 하네스를 잡았다. 이번에도 먼젓번 시험 때와 비슷해서 나는 그 활달한 친구와 아파트 한 바퀴를 빙 돌았고, 그 모습을 선생님들이 뒤따르며 기록했다. 1번은 내 걸음 속도에 비해 조금 느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같이 지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헉!”

 1번은 차량 출입을 막기 위해 세워둔 장애물을 폴짝 뛰어넘었고 운동신경 마이너스인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무리다. 난 1번은 무리다.

 다음 선수는 2번. 2번은 반갑다며 연신 내 손을 핥아댔다. 뜀박질하지 않는 걸 보면 1번에 비해 좀 더 크지만 점잖은 거 같았다. 그리고 걷기 시작. 좀 전과 똑같은 코스를 도는데 완벽 그 자체였다. 1번이 점프한 그 지점에서 좀 떨어져 있는 인도를 택한 것이다. 그것도 누군가 지시한 것이 아닌 순전히 그의 판단만으로! 조금 돌아가긴 해도 나는 이편이 훨씬 마음 놓였고 꽤 빠르긴 했지만 걷는 속도도 1번보다 안정적이었다.

 마지막 선수, 코카스.. 아니, 3번은 엄청 작았다. 20킬로도 나가지 않는 리트리버라니. 좀 큰 코카스파니엘 같달까. 3번은 잘하긴 했지만 작은 만큼이나 느렸다. 느릿느릿 걸으니 할아버지 손잡고 나온 손주가 된 기분이었다. 이게 서려는 건지, 가려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왔다.

 “전 2번이 제일 좋았어요. 안정적이고 그 친구가 제일 야무진 것 같달까.”

 시험보행을 마치고 걸은 소감을 말할 때 2번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좋았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선생님들 몫이었다. 만약 셋 다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나는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했기에 그냥 그 셋 중에 연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땐 분명 누구든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막상 합숙을 시작하니 사심이 발동되었다.

 “2번 와라. 2번!”

 나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늑대처럼 방안을 뱅글뱅글 돌며 중얼거렸다.

 - 탁탁탁! 타타타탁!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이 발소린... 강아지다! 점점 내 방으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재빨리 선생님 지시대로 의자에 앉았다. 같은 눈높이에서 강아지와 첫 대면을 하는 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들어갑니다.”

 노크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 학학학!

 거대한 털북숭이가 헥헥거리며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댔고 손을 마구 핥았다.

 ‘2번!!!’

 나는 단번에 그가 2번인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대로 2번이 가족이 된 것이다.

 “ 친구 이름은 도담이고 남자아이예요. 몸무게는 27kg...”

 담당 선생님이 도담이의 특징을 말해주며 그가 숙소에서 사용할 매트를 건네주었다.

 “그럼 도담이 반응도 밖에서 살펴야 하니까 창문 커튼 좀 걷어둘게요. 그냥 편하게 있으세요.”

 선생님은 내 방 커튼을 활짝 열어두고서 방을 나갔다.

 - 학학학

 방 구경에 정신없었던 도담이가 어리둥절해하며 선생님이 나간 문 앞으로 갔다. 낯선 사람과 단둘이 있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봤던 ‘강아지를 맞이할 때 해야 하는 행동’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가만히 옆에 앉아 있기. 반응이 없다. 계속 문만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조금 더 가까이 가봤다. 피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술래잡기하듯 다가가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리길 반복했다. 나는 처음 도담이가 자리 잡았던 곳에 그와 똑같이 드러누웠다. 그러자 잠시 후 그가 다가왔다.

 - 킁킁킁

 여기서 두 번째, 냄새 맡는 걸 거부하지 않기. 얼굴 위로 그의 콧물이 떨어졌다. 나는 죽은 척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도담이가 내 손과 엉덩이를 킁킁 거렸다. 뭐 하는 인간인지 신원 조사 중인가 보다.

 “그래. 이제 내가 너 누나야. 잘 기억해둬.”

 한참 냄새를 맡다가 그가 내 옆에 나란히 누웠다. 창밖에서 선생님이 봤을 때 어때 보였을까? 다 큰 여자가 개랑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꼴이라니. 신기하게 별로 창피하지 않았다. 친해질 수만 있다면 시내 한복판에도 드러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와 등을 맞대고 온기를 나눴다.

 - 똑똑!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이었다. 도담이는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뽀르르 선생님 품으로 달려갔다.

 “제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절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잘하고 있던데요. 생각해 봐요. 나이 20살 넘어서 다른 사람이랑 살라고 하면 처음부터 편하겠어요? 다 시간이 필요하지.”

 도담이 나이는 2살. 사람 나이론 성인이 되고도 남는 나이다. 생각해 보니 나라도 이 나이에 다른 사람이랑 살라고 하면 영 불편할 거 같았다. 게다가 그는 내가 스쳐 갈 인연인지, 앞으로 같이 살 사람인지 알 리 없었다.

 “지금부터 컨트롤 연습할 거예요. 우선 앞으로 여러분이 아이들을 다뤄야 하니 방향 전환 연습도 하죠. 잘했을 때 칭찬과 좀 전에 드린 사료를 하나씩 주세요. 우선 앉아, 엎드려부터 갑니다.”

 “앉아.”

 도담이는 선생님을 향하고서 헥헥대기만 했다.

 “앉아.”

 이번엔 앉았다. 사료를 한 알 주자 엉덩이를 씰룩댔다.

 “엎드려.”

 한 번에 엎드렸다. 역시 먹을 것의 힘이란.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료를 한 알 더 주었다. 도담이의 혓바닥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제 똑바로 걷다가 멈춰서 아이들을 한 바퀴 돌리는 거예요. 지시어는 ‘따라’입니다.”

 보행 주도권을 잡는 훈련이었다. 안내견은 늘 파트너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그는 아직 먹이 없이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가 나에게 항상 집중할 만큼 나와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교육은 앞으로 도담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 반드시 클리어해야 할 과정이었다. 나는 선생님 지시에 맞춰 긴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돌리세요.”

 “따라.”

 선생님의 호령에 왼쪽으로 리드줄을 돌렸다. 똑바로 날 끌고 가던 도담이가 갑작스러운 전환에 놀라 허둥지둥 리드줄 방향대로 걸음을 옮겼다. 아주 중요한 교육이기에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따라’를 외쳐야 했고 도담이는 한 템포 늦게 움직이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곧바로 반응해주었다.

 - 끄응~~

 ‘적당히 좀 해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가 지겨운지 낮은 목소리로 꿍얼댔다. 사실 나도 재미는 없었다. ‘따라’를 할 때 원칙은 8자 모양을 그려야 하지만 교육이 거듭될수록 도담이는 항의하듯 터덜터덜 원형을 그렸고, 나 또한 제대로 8을 그리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그 모습이 괜히 미안해서 사료를 두 알 주었지만 그는 냉큼 받아먹고서 다시 선생님만 바라볼 뿐이었다. 컨트롤기술 수업 후 위생관리법을 배울 때도 도담이는 영 시큰둥했다. 칫솔질과 빗질을 하려고 하면 은근슬쩍 내 손을 피했다. 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도 계속 선생님만 바라봤고 내 말에는 도통 반응이 없었다. 다른 안내견들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보였지만 도담이만큼은 아니었다. 역시 그는 내가 마음에 안 드나보다. 기운이 빠졌다. 나는 1년 반이나 기다렸는데...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활기찬 합숙 분위기에서 이 기분을 내색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난 선생님이 말햇던 ‘20살 넘은’을 떠올리며 섭섭한 마음을 감춰야만 했다.

 “고생했어.”

 마지막 교육이 끝나고 코트와 하네스를 벗겨주자 그가 매트로 바쁘게 뛰어갔다.

 “힘들었어?”

 삐졌는지 그가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처음 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한 것이 언짢았던 모양이었다. 고집 있는 성견이 종일 생판 모르는 사람이 시킨 대로 했으니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근데 이제 같이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어. 잘 지내보자.”  나는 뒤돌아선 그의 등을 더듬었다. 화해의 의미로 남은 사료 한 알을 그의 머리 쪽 가까이 가져갔다.

 - 킁킁킁, 텁!

 그가 받아먹었다. 기분이 풀렸는지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고, 나는 못 이기는 척 한 알을 더 주었다.

 “놀까?”

 나는 뼈다귀 장난감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스트레스를 풀 듯 그는 정신없이 그걸 씹어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드러웠다. 마음 어딘가가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어둠 속에서 들리던 장난감 소리가 숨소리로 바뀌었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의 숨소리. 나는 그 평온한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회상했다. 걷는 건 물론이고 양치질도, 빗질도 내 맘 같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것투성이다. 무엇보다 도담이가 날 별로 안 좋아하는 게 걱정이다. 안내견이면 누구에게나 살갑고 로봇처럼 척척 말도 잘 들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와 다른 존재랑 관계를 맺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잘 자.”

 침대에서 나와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손길에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같았다. 평소 같으면 시끄러워서 못 잘 텐데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잠이 솔솔 오는 게 안도감이 들었다. 도담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앞으로 그와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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