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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4. 2023

안내견 파트너가 된다는 것

안내견 입양기 1: 시작된 합숙 훈련


 “타. 짐 빠뜨린 거 없지?”

 “응.”

 빵빵해진 백팩을 싣고 나는 차에 올랐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나만의 털북숭이 보디가드를 만나는 날. 나에게도 드디어 안내견이 생기는 것이다. 이날이 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했다. 첫 번째, 신청서를 작성한다. 신청서에는 신청자의 시각장애 정도와 어떤 사회활동을 할지에 대한 계획을 담는다. 그리고 시험을 치른다. 시험은 선생님들과 인터뷰하기, 안내견과 걸어보기, 흰지팡이를 이용해 혼자 동네를 다녀보기로 세 과정이다.

 “혹시 불합격될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니까요.”

 긴장이 되었다. 재활교육을 받은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허접한 보행 실력이 들통날지도 몰랐다. 특히 걷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는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안내견 파트너로 적합한지 회의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였으므로 나는 눈을 끔벅이며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튼 안내견 파트너가 되는 건 보통의 반려견 보호자가 되는 것 이상의 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안내견 입양 대상자로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대학에 붙었던 순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대상자가 되어도 곧바로 안내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발주에 따라 제작되는 공산품이 아니며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노란 안내견 코트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육을 받고 3번의 시험에 통과해야만 비로소 안내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비율은 훈련받은 10마리 강아지 중 단 2~3마리 정도로 매우 적은 데다가 심지어 함께 생활할 시각장애인과 성향이라든가 호흡이 맞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1순위 대기자로 기다리고 있어도 부적합하다면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시스템. 이는 정말 장기이식과 유사했다.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 합격 통지를 받고 1년 반. 비로소 나는 안내견학교가 있는 용인으로 향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엉킨 서울 시내 도로를 차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멀미가 나는지 빈속에 커피를 들이킨 듯 묘하게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한 느낌이지만 불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이 두근거림은 분명 설렘. 드디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품은 첫 번째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강아지 타령하더니 이렇게 꿈을 이루는구만...”

 계속 아무런 말이 없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나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왼쪽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좋아?”

 “응.”

 “너도 참...”

 “이왕 이렇게 된 거 뭐라도 이루면 된 거 아냐?”

  나는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향하고서 대답했다. 그렇다. 이왕 시각장애인이 된 거, 뭐라도 이룰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10대 때 꿨던 미술학도의 꿈도, 20대 때 꾼 유학에 대한 열정도 물거품이 되었지만 뭐라도 하나 소원성취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 그건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정은 어떻든 간에 이렇게 이루게 되니 불만은 없었다. 엄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이어폰을 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더 이상 서지 않게 되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는 묵직한 트럭 소리가 옆을 지나갔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나는 나대로 음악을 듣고, 엄마는 엄마의 주크박스를 재생하며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달렸다.

 “중간에 한번 들를 수 있음 들를게. 잘 지내고.”

 “알았어. 걱정 마.”

 엄마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지정받은 방에 들어와 벽 한편에 짐을 내려놓았다. 현관 벽을 따라 책상과 벽걸이 텔레비전이 나왔다. 책상의 매끈한 선 끝에 다시 벽이 나타났다. 그 벽에선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쯤 떨어져 종아리에 푹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침대였다.

 “내 방보다 훨씬 좋네.”

 평생 요 생활을 했던 내게 침대란 여행 아이템과 같았다. 나는 잔디밭에 등을 비벼대는 강아지처럼 한동안 그 위에서 뒹굴었다. 앞으로 1주일은 이 방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뺨 위로 흘러내리는 햇살에 눈이 감기려 할 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집합시간.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선생님 셋과 정체 모를 신사, 숙녀였다. 이번 합숙 멤버는 세 명으로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건물 내부 구조를 안내받았다. 앞으로 이 안에서는 혼자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 방 맞은편에 무엇이 있는지, 교육실이 어디에 있는지 외워야 했다. 듣고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고 저장하는 것. 모든 걸 기억해야 하는 것. 눈이 안 보이는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분명 온 집중력을 동원해 암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타고난 방향치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몇 번인가 복도를 떠돌다가 선생님들로부터 구출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어쨌든 간에 그럭저럭 첫째 날 중반을 잘 보내는 듯했다.

 “그런데 저희 안내견들은 언제 만나요?”

 ‘맞아. 내가 그걸 묻고 싶었어.’

 안내견의 역사를 배우고 안내견 인형에 코트와 하네스를 입히는 연습을 반복하던 중, 함께 합숙하던 숙녀가 물었다. 수차례 물어보고 싶어서 목구멍에 걸려 있던 질문을 누군가 해주니 속이 후련했다.

 “내일 만날 거예요.” “내일이요? 이름이나 성별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맞아. 뭐 이리 신비주의지.’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나는 속으로 빨리 정보를 캐내라고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알게 되는데 하루만 더 기다리시죠.”

 담당 선생님이 웃더니 다시 수업을 이어갔다. 계속해서 하네스와 핸들을 분리하고 재조립하는 연습이었다. 우리는 그저 빳빳한 가죽 하네스에 핸들을 넣었다 뺐다 하거나 앞에 놓인 인형에 그것을 입히고 벗기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머리가 큰 그 리트리버는 헤- 입을 벌린 채 약올리듯 빙글대기만 했다.

 그리고 첫째 날 마지막 수업. 교육실에 들어서자 무언가가 푸드덕 소리를 냈다. 안내견이었다. 실제 안내견과 생활 중인 시각장애인 선생님 수업이기에 안내견도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선생님의 인생을 들었다. 안내견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체적이진 않았어도 선생님의 목소리엔 자신이 겪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이 묻어 있었다. 역시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불편한 거지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같은 문제를 눈이 보이는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뿐이에요. 장애가 있어서 우리 자체가 쓸모없게 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눈을 사용할 수 없는 거죠. 그러니 자신이 생각한 걸 말하고, 스스로 해결하려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세요. 우리는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요.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혼자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내견들은 그런 저희를 위해 태어난 친구라고 볼 수 있죠. 우리의 눈이 되어주니까요. 이 친구들이 은퇴하는 날이 올 때까지 앞으로 안내견들을 보살피고 책임감 있게 지켜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파트너’인 거예요. 각자가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채워주니까요.”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 안내견이 긁어대자 수업 종료시간을 알리는 듯 그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찰랑찰랑 소리를 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하네스와 리드줄이 있었다. 좀 더 손을 움직이자 그 옆에 말랑한 고무빗과 강아지용 칫솔 세트가 만져졌다. 커다란 뼈다귀 모양 장난감도 닿았다. 모두 곧 만날 ‘그’의 것이다. 이 물건들의 주인은 나를 위해 태어났다. 나라는 한 사람의 시각장애인을 지켜주기 위해 어미 견과 헤어지고, 퍼피워커와 학교 선생님 곁을 떠나 내게로 오는 것이다. 그는 세 번째 이별을 경험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은퇴라는 이름으로 나와도 이별하게 된다. 같은 지붕 어딘가에서 세상모르고 잠자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어딘가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하네스를 가슴에 안았다. 무거웠다. 수업 때는 무거운 줄 몰랐는데 이상하게 무거웠다.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나는 이름 모를 그에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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